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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전례 및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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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전례 및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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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전례 및 오늘의 묵상

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전례 및 오늘의 묵상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 내신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큰 기쁨이고 희망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 부활 대축일은 하느님의 권능과 주님 부활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이제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함께 벅찬 기쁨을 노래합시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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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제1독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34ㄱ. 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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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5,6ㄴ-8

형제 여러분, 6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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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7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3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5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6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7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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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매일미사 예수 부활 대축일 오늘의 묵상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에 봉독된 복음은 세 사람의 믿음의 여정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 여정은 ‘보다’라는 동사를 통하여 진행되는데, 우리말 성경에 동일하게 ‘보다’로 옮긴 낱말은 사실 그리스 말 성경 본문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동사는 ‘블레포’입니다.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요한은 무덤 안에 아마포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저 단순하게 어떤 장면을 본 것입니다. 두 번째 동사는 ‘쎄오레오’인데, 무엇인가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 ‘살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베드로는 무덤 안에 들어가 아마포와 수건이 놓여 있는 상태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앞뒤 상황을 고려하며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여겨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 동사는 ‘호라오’입니다. 베드로와, 뒤이어 무덤에 들어간 요한은 ‘보고’ 믿습니다. 이때의 ‘봄’은 단순히 시각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믿고 이해하는 인식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세 개의 동사를 통하여 오늘 복음은 등장인물들이 처음에는 단순히 ‘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는’ 단계로 발전하고, 마지막으로는 본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까지 믿게 되는 은총에 다다름을 알려 줍니다.

보여 주시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은총입니다. 보여 주어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과 부활의 연관성은 단순히 지적인 인식을 넘어서는 사랑과 신뢰의 ‘봄’으로만 제대로 체험되는 사건입니다. 빈 무덤이라는 예수님의 ‘부재’는 사실 어디에나 두루 계시는 ‘편재’의 시작임을 믿는 것, 빈 무덤이야말로 부활의 가장 분명하고도 명백한 증거가 되는 현장임을 고백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가지게 된 새로운 ‘봄’(시각)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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