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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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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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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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독서

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독서

네가 하느님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2,23-33

그 무렵 야곱은 밤에 23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야뽁 건널목을 건넜다.

24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30 야곱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지만, 그는 “내 이름은 무엇 때문에 물어보느냐?” 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었다.

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33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짐승의 엉덩이뼈에 있는 허벅지 힘줄을 먹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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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

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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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7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치유 이야기를 8장과 9장에 모아 두었는데, 그 끝자락에 자리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치유 활동을 요약하고 수확할 밭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10장의 파견 설교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경탄하기도 하고, 이제까지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바리사이들은 질투로 중상과 비난과 적대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나요? 보통 나를 반기는 사람들과는 같이 있고 싶어 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더 인기를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피하고 싶고 똑같이 비난으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그분께서는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곧 당신을 반기고 환호하는 곳이라 해도 계속 머무시지 않았고, 당신을 거부하는 곳에도 다가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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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요?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9,37) 연민은 나를 떠나 상대를 향한 움직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매이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명, 곧 영혼들의 구원이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의 사명이라는 목적의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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