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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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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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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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5,17-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20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

21 그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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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43-5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43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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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지난해 3월 유례없는 산불로 안동교구의 여러 지역이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름답던 자연과 삶의 자리를 집어삼킨 화마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흉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면 절망스럽기만 한 검게 타 버린 숲이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푸른 희망입니다. 숯처럼 그을린 숲 바닥 사이로 새싹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죽어 버린 듯한 숲은 생명의 숨을 들이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복구하기보다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기다릴 때, 숲은 스스로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생명 또한 더욱 다양해진다고 합니다. 자연스러움이란 결국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단호히 경고하시지만, 그 엄중함 뒤로 오늘 복음의 왕실 관리처럼, 당신을 향한 믿음으로 내맡기는 이들에게 새로운 회복을 위한 희망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돌려 그분께 돌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주십니다. 상처로 얼룩진 자리 위에 새 생명을 일으키시고, 고통 속에서 울부짖던 이들에게 잔잔한 기쁨을 선물처럼 내려 주십니다. 이는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깊은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우리 일상에도 마음이 재처럼 타들어 가는 때가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연스럽게 하느님께 내맡겨야 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신 그분께서 우리가 변할 수 있도록,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든든히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김재형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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