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3. 22.
반응형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반응형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기도를 마치자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23-31

그 무렵 23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에게 가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24 동료들은 그 말을 듣고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아뢰었다. “주님,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25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주님의 종인 저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민족들이 술렁거리며 겨레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26 주님을 거슬러, 그분의 기름부음받은이를 거슬러 세상의 임금들이 들고일어나며 군주들이 함께 모였구나.’

27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분, 곧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없애려고, 다른 민족들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과도 함께 이 도성에 모여,

28 그렇게 되도록 주님의 손과 주님의 뜻으로 예정하신 일들을 다 실행하였습니다.

29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0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31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반응형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8

1 바리사이 가운데 니코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2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반응형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4월 13일 매일미사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최고 의회 의원이자 바리사이로 뛰어난 지식과 명예를 지닌 세상의 시선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는 단순히 방문한 시간이 밤이라는 뜻을 넘어, 아직 그가 영적으로 어둠 속에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율법을 모범적으로 지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아왔지만,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영적 갈증과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물음표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사회생활도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과 영적 목마름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 니코데모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요한 3,3 참조) 말씀하십니다. 이는 삶의 ‘차원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의 계산법과 논리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질서와 논리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시듯이 그분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분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방식에 참여하는 것”(「신앙의 빛」, 18항)입니다. 내 지식과 경험의 틀 안에 판단을 가두고, 신앙마저도 내 방식대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내맡기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내 생각과 계획보다 훨씬 더 크신 하느님의 이끄심과 은총에 자신을 맡기는 용기, 바로 그 용기를 통하여 우리는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삶’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