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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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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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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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제1독서

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제1독서

예수는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5,13ㄴ-21

그 무렵 13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14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16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7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18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9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20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21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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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복음

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복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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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5월 22일 매일미사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당신을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경상도 남편을 둔 아내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아내가 평소에 사랑 표현에 인색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옛날 옛적에 ‘사랑해’와 ‘안 사랑해’가 살았대. 그런데 ‘안 사랑해’가 죽고 말았대. 그럼 누가 남았게?” 아내는 “사랑해.”라는 말을 기대하였지만, 남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니 뭐 잘못 무긋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요. 사랑의 말은 상처를 낫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 물으시며 베드로에게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한 것을 세 번의 사랑 고백으로 덮어 주시며 사랑의 실패를 치유하시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시는 것을 넘어, 사랑을 표현하시는 것을 넘어, 사랑을 확장시키는 데로 나아가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 뒤에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사명이 따라옵니다(21,16-17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베드로 사이의 사랑이 그 안에만 갇히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를 넘고, 나의 공동체를 넘어서 심지어 나의 원수에게도 이르러야 합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거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양들임을 발견하고 돌보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21,15)라고 고백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데만 머물지 말고, 주님께서 저마다에게 주신 사명을 실천합시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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