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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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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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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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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제1독서

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그분의 몸인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15-23

15 형제 여러분, 나는 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16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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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복음

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복음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8-12

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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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28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루카 12,11) 끌려가게 된다면 미리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예수님 시대에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위험하고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당’을 말하는 것은, 아직 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기 전에도 유다인 출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회당에서 쫓겨나고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도 가셨고 예루살렘 성전에도 가셨으며,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리스도인들은 유다교 회당과는 분리되고 배척을 받습니다. 로마의 박해도 곧 다가옵니다. 복음서가 작성되고 나서 이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회는 박해를 받았고,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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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순교자들을 기억하여 봅니다. 그들이 잡혀갈 때,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였을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이미 순교를 각오한 것이었고,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가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신앙을 당당하게 증언할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고자 할 말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을 고백하고, 그것도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지극히 단순하게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신앙을 고백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한다면, 그것은 순교자들만큼 우리의 신앙이 절실하지 않으며 우리가 목숨을 보전하고자 전전긍긍하기 때문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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