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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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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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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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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제1독서

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14-21

형제 여러분, 14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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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4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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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24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에페소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여러 가지를 청합니다. 여기서 청하는 것들은 사람들이 흔히 기도하며 청하는 것들과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평화로운 삶이나 건강, 가정의 화목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내적 인간이 굳세어지기를,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사시기를,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러한 것을 하느님께 청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기초로 하여서 살기를 바라고 그것을 하느님께 청합니까? 그렇게 하는 삶은 어떠하리라고 생각합니까? 그 삶은 마냥 평온할 수만은 없을 것이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미친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서 마귀가 들렸다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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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이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에페 3,19) 것이라면, 그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이 여느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의 삶은 뒤집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나는 성인이 아니라고, 나는 하느님이 아니라고 말하며 사랑의 요구 앞에서 물러납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3,19) 청합니다. 그런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에페소서를 읽으면서, 이러한 청원을 하느님께 드린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땅만 쳐다보고 땅에 달라붙어서 그저 삶의 사소한 것들을 청하는 것을 넘어,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드높은 은총의 삶을 청하여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3,20)이십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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