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4월 23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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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4월 23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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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3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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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3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그들은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9-26

 

그 무렵 19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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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3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복음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2-30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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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3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의 기원을 전하여 줍니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안티오키아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를 파견합니다. 그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나자렛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고백하는 이’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성장하고 생활하셨지만(인성) 동시에 그리스도이신 하느님(신성)이심을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그리스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시도록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시며 무기력한 불통을 지적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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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통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으며, 견제와 위협만 되풀이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상대의 소리를 알아들어야 하고(어제 복음), 그 소리를 따라야 하며(오늘 복음), 그 따름으로 상대방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리를 구별하여 알아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믿고 따르며, 그 관계성을 증언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때,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처럼 아무리 “분명히” 말한다 하여도 다시 “분명히 말해 주시오.”라며 똑같은 의심만 되풀이하게 됩니다.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니 아무리 말하여도 알아듣지 못하고, 의심을 붙잡고 있으니 믿음도 생겨날 리 없습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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