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4월 24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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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4월 24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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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4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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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4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나를 위하여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24―13,5

 

그 무렵 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25 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4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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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4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4-50

 

그때에 44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45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50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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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4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본문도 “나”라는 말이 절마다 등장할 정도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직접적으로 알려 줍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당신께서 ‘하느님과 완전히 일체’이신 분이심을 선언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계시하고자 보내지셨고,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어 빛과 어둠, 구원과 심판이라는 ‘대조 개념’을 통하여 당신의 두 가지 사명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우리가 어둠 속에 방치되지 않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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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체’라는 주제로 돌아가십니다.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당신의 말씀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언제나 진리이고 생명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독서는 이 ‘말씀’이 얼마나 살아 있고 역동적 생명력을 가졌는지를 증언합니다. “그 무렵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라고 옮긴 그리스 말 ‘크라조’는 비명을 지르듯이 격하게 소리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끝없이 증거와 표징만을 요구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께서 누구이시며 무슨 사명으로 오셨는지 격렬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둠에 있지 않게 빛으로 오셨지만, 우리가 여전히 소모적 의심으로 어둠을 붙잡고 있으면 그 빛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단단하고 격렬한 어조로 경고하신다고 하여도 말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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