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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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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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오늘의 묵상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오늘의 묵상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이 미사는, 거센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믿음과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불러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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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제1독서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제1독서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 욥기의 말씀입니다.38,1.8-11

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8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9 내가 구름을 그 옷으로, 먹구름을 그 포대기로 삼을 때,

10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11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할 때에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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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제2독서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제2독서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5,14-17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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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복음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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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오늘의 묵상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일 오늘의 묵상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언제나 불확실함이 있으며, 만일 너무나 확실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매사에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려는 일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셔야 합니다. 누군가가 하느님을 확실히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표지입니다”(『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안토니오 스파다로와의 대담).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알 수 없기에, 너무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뜻을 알고자 노력할 뿐이고, 그 노력으로 숨겨진 의미를 아주 조금씩 깨달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순과 고통, 예기하지 못한 사고, 소중한 이와 헤어짐 등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듯한 이유를 붙일 수야 있겠지만, 사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은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그분의 뜻을 찾는 여정을 걸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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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의 욥은 하느님의 뜻을 찾아 모험에 나섰습니다. 그의 눈으로는 무고한 의인의 고통, 아무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불행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저 하느님을 만나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고, 이 고통의 이유와 의미를 묻고자 합니다. 이에 대하여 결국 하느님께서 응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답변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크심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분의 크심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고통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인간 사고의 틀 안에 가두기보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분의 크심을 인정하고, 불확실성 안에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그럴 때 알 수 없는 고통의 신비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4년 6월 23일 매일미사 후 6월 예수 성심 성월 기도문

6월 예수 성심 성월 기도문 (예수 성심께 천하 만민을 바치는 기도)

○ 지극히 어지신 구세주 예수님, 주님 앞에 꿇어 경배하오니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 저희는 이미 주님의 백성이오니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나이다.

주님과 하나 되고자

오늘 저희를 주님의 성심께 봉헌하나이다.

○ 주님을 일찍이 알아 모시지 못한 사람도 많고 주님을 알고도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주님을 떠난 사람도 많사오니 ● 지극히 인자하신 예수님, 이런 사람들도 다 불쌍히 여기시어 주님의 성심께 이끌어 들이소서.

○ 주님께서는 목자이시니 주님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을 보살피시고 이미 주님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어 굶어 죽는 일이 없게 하소서.

● 옹졸한 고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나 불목하여 갈린 사람들도 부르시어 저희가 모두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한 우리에서 한 목자 밑에 살게 하소서.

○ 주님, 거룩한 교회를 평화의 깃발로 세우시고 모든 나라에 참된 평화를 주시어 온 세상 어디서나 입을 모아 저희를 구원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원히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드리게 하소서.

◎ 아멘.

○ 예수 성심,

●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예수 성심께 바치는 봉헌 기도 ○ 지극히 어지신 구세주 예수님, 주님 앞에 꿇어

주님의 성심께 저희 성당(병원, 학교······)을 봉헌하나이다.

●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희 성당(병원, 학교······)을 보살펴 주소서.

저희는 온전히 성심께 의지하고 바라오니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다스리소서.

○ 예수님, 저희가 하는 일에 강복하시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저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게 하소서.

● 온 세상 어디서나 모든 이가 입을 모아 예수 성심을 찬미하며 사랑과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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