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6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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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6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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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6월 4일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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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제1독서

6월 4일 매일미사 제1독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3,12-15ㄱ. 17-18
사랑하는 여러분,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15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8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이제와 영원히 그분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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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복음

6월 4일 매일미사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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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6월 4일 매일미사 오늘의묵상

오늘 독서는 세상 마지막 날이 될 “하느님의 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날은 주님을 거스른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지만, 주님을 믿고 바라며 기다린 이들에게는 구원과 승리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마지막 날은 혼돈 속의 멸망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새롭게 창조되는 구원입니다(이사 65,17 참조). 마지막 날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으로 지상 생활 여정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죽음이 지닌 상실의 힘이 너무나 강력해서, 죽음이 마치 온 생명을 찢고 파괴하여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죽음을 지상 생활의 완성이며 영원한 삶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운명이며, 모든 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과제입니다. 죽음이라는 과제는 사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양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신앙인은 죽음을 절망과 두려움의 순간이 아닌 삶의 완성으로, 또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실현되는 구원의 순간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앙이 깊었습니다. 부모들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마지막 날을 세심하게 준비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날마다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응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부족한 부분은 주님의 너그러운 자비에 맡길 뿐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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