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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매일미사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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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매일미사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수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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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매일미사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수요일 오늘의 묵상

6월 5일 매일미사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보니파시오 성인은 673년 무렵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엑시터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된 그는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성인은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주교로 축성되어 마인츠 교회를 다스리며, 동료들과 함께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세우고 재건하였다. 성인은 프리슬란트(오늘날 네덜란드) 지방에서 전교하다가 754년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다. 1874년 비오 9세 교황은 보니파시오 주교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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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매일미사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6월 5일 매일미사 제1독서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 1,1-3.6-12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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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매일미사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6월 5일 매일미사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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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매일미사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묵상

6월 5일 매일미사 신부님 강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과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이십니다. 사두가이들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는 사회적 관습을 근거로 부활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사회적 관습에 달려 있지 않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바탕을 둡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선언으로서, 부활 신앙은 죽음 뒤에도 하느님께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믿음입니다. 사실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보이는 죽음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는 남겨진 이들에게도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어 보이는 영원한 상실은 유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크나큰 슬픔과 고통을 안겨 줍니다. 그런데 이 슬픔과 고통이 ‘부활 신앙’ 안에서 극적으로 변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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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온 생애를 돌보셨던 주님께서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돌보아 주신다는 믿음, 그래서 지금 그의 영혼이 주님 품에서 아무 고통 없이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은 남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기쁨과 희망으로 바꿉니다. 복음에서 이야기하듯,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을 믿고 살아간 이들은 모두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믿고 살아간다면, 먼저 죽음의 강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들과 다시 만나고, 함께 웃으며 함께하였던 오늘을 추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우리를 지켜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께서 그 시간을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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