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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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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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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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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제1독서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7,25-31

25 형제 여러분,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내놓습니다.

26 현재의 재난 때문에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27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면하게 하고 싶습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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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

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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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9월 11일 매일미사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1). 지난해에 아버지의 임종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내세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아버지였지만, 그렇다고 현세에 집착하거나 죽음을 아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의사들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인사도 없이 그냥 가셨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앙이 없는 삶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앙이 있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삶에 대하여 아무 미련 없이 떠나가는데,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현세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 몸을 끔찍이 아끼며, 아주 사소한 예를 들면 선풍기는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려 하는 우리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지고 있음을 과연 믿는 것일까요?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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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현세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영원한 삶을 바라며 살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불행 선언도 같은 맥락입니다.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그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삶 속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마치 현세가 전부인 양,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삶만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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