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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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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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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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제1독서

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제1독서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7-10

7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8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10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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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복음

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복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2

35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1월 4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묵상

요한 복음서는 “무엇을 찾느냐?”(1,38)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누구를 찾느냐?”(20,15)라는 물음으로 마무리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뒤따라오는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던지신 물음은 “무엇을 찾느냐?”였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던지신 물음이 바로 “누구를 찾느냐?”라는 것이었지요. 결국 신앙의 여정은 ‘무엇’을 찾는 것에서 시작하여 인격적인 사랑의 동반자인 ‘누구’를 만나서 그 사랑을 키워 가는 것이라는 말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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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기도를 바치며 환희의 신비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대개 이 신비를 묵상하노라면 아들을 잃고 애태웠을 부모의 심경과, 마침내 아드님을 찾아내시고는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 하시는 성모님의 말씀, 그리고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 하시는 아드님 예수님의 답변만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환희의 신비입니다. ‘환희’란 터져 나오는 기쁨이지요.

자신들의 아들이면서도 하느님이신 그분을 잃었다가 가까스로 되찾은 부모의 감격과 탄성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요? 우리 마음의 그물이 촘촘하지 못한 탓인지 우리는 삶에서 예수님을 쉽게 놓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놓쳐 버린 예수님을 다시, 거듭거듭, 새롭게 되찾고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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