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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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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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오늘의 묵상

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오늘의 묵상

이냐시오 성인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현재 튀르키예의 안타키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가 되었다. 요한 사도의 제자였다고도 하는 그는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던 안티오키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107년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에 들르는 곳마다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조 그리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하여 슬기롭고 심오하게 서술하였다. 그 편지들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초대 교회의 신앙생활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제1독서

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제1독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4,1-8

형제 여러분, 1 혈육으로 우리 선조인 아브라함이 찾아 얻은 것을 두고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3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이 선물이 아니라 당연한 보수로 여겨집니다.

5 그러나 일을 하지 않더라도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습니다.

6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7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8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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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복음

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복음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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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오늘의 묵상

2025년 10월 17일 매일미사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 순교자 기념 오늘의 묵상

어릴 때 우리나라의 무서운 전설을 다룬 드라마인 “전설의 고향”을 보며 귀신을 무서워하였습니다. 특히나 저는 ‘내 다리 내놔’ 편을 보고 나서는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저를 잡아갈까 봐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집 안에 화장실이 있지 않고 집 밖에 있어서 밤에 화장실에 가기도 꽤나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이처럼 어릴 때는 귀신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를 무서워하였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보이는 존재가, 특히 사람이 무섭습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저에게 하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더 무섭습니다.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볼 때면 사람이 정말 무섭게 느껴집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 12,4-5)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경외’, 곧 두려워함은 성령 칠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무서운 분이셔서, 우리가 죽은 뒤에 심판하시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경외란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분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리는 누구를 가장 두려워합니까? 사람입니까? 하느님입니까? 하느님을 왜 두려워합니까?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까? (이찬우 다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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