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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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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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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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제1독서

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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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복음

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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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4).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왜 참될까요? 그의 증언은 상상이나 소문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듣고 본 것으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증언하였고, 덕분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시며, 세상의 죄를 없애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이 사명에 충실하였고, 자신의 증언으로 ‘구원의 문’이신(요한 10,9 참조) 예수님께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도 하느님께서 저마다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는 올바로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욕망이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3)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뜻을 올바로 식별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소중합니다. 작은 밀알 하나가 많은 열매를 맺듯, 우리도 주님의 은총 안에서 작은 일에도 충실한 일꾼, 주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충실한 일꾼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이철구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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