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0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4월 30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30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26년 4월 30일 매일미사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발 씻김은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서로 낮추고 서로 섬기라’는 본보기를 보여 주신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7)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저 그분께 무엇인가를 바라며 기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분을 따라 살겠다는 결심까지 포함합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걸으신 ‘낮아지심의 길’을 기꺼이 따라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인정받고 높아지는 삶이 아니라, 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손해를 감수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아 있는 감실’이 되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오신 주님께서 내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시기를, 그래서 내가 머무는 자리마다 주님의 낮아지심과 섬김의 모습이 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국 성체성사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자리에 서려는 세상의 논리가 아닌, 작아지고 나누는 삶으로 참으로 행복해지는 ‘하늘 나라의 논리’를 선택하겠다는 고백입니다.우리의 신앙은 알고 느끼는 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본당에서, 일터에서 내가 먼저 낮아질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돌아보며, 그 자리를 기꺼이 선택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참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행복한 이들’이(13,17 참조) 될 것입니다.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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