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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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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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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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제1독서

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25,21ㄴ).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5,1-12

1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치드키야 통치 제구년 열째 달 초열흘날에,전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그곳을 향하여 진을 치고사방으로 공격 축대를 쌓았다.2 이렇게 도성은 치드키야 임금 제십일년까지 포위당하였다.3 그달 초아흐렛날, 도성에 기근이 심해지고 나라 백성에게 양식이 떨어졌다.4 드디어 성벽이 뚫렸다.그러자 군사들은 모두 칼데아인들이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데도,밤을 틈타서 임금의 정원 곁에 있는두 성벽 사이 대문을 통하여 아라바 쪽으로 갔다.5 칼데아인들의 군대가 임금을 뒤쫓아 예리코의 들판에서 그를 따라잡자,그의 모든 군대는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6 그들이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리블라에 있는 바빌론 임금에게 데리고 올라가니,바빌론 임금이 그에게 판결을 내렸다.7 그는 치드키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가운데 살해하고치드키야의 두 눈을 멀게 한 뒤,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8 다섯째 달 초이렛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 제십구년에바빌론 임금의 신하인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이 예루살렘에 들어왔다.9 그는 주님의 집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태웠다.이렇게 그는 큰 집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10 또한 친위대장이 이끄는 칼데아인들의 모든 군대는예루살렘 성벽을 돌아가며 허물었다.11 느부자르아단 친위대장은 또 도성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과바빌론 임금에게 넘어간 자들,그리고 그 밖의 남은 무리를 끌고 갔다.12 그러나 친위대장은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을 일부 남겨,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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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복음

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복음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4

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2 그때에 어떤 나병 환자가 다가와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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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6일 매일미사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산상 설교 뒤에 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따르지만, 예수님의 눈길은 한 나병 환자에게 향합니다. 고대의 ‘나병’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질병의 수준에서 이해되지 않습니다. 레위기 13―14장이 서술하듯 나병 환자는 격리되고 소외되는 것을 참아야 하였고,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 존재 전체가 부정당하고 고립되어야 하였습니다.나병 환자는 예수님께 다가와 절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 이 고백은 그저 치유를 바라는 요청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다시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는 간청입니다.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십니다. 그 접촉은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었지요(레위 5,3 참조). 사회가 부정하다 여긴 그곳에 예수님께서는 과감히 함께하셨고, 부정이 전염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분에게서 깨끗함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위험이 아니라 회복의 통로가 됩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율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도록 보내십니다. 이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산상 설교의 선언을(마태 5,17 참조)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8,4)라는 당부는 묘한 긴장을 남깁니다. 많은 군중 사이에서 예수님의 치유는 소문으로만 머물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인정과 용서와 화해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 됩니다. 마음을 열기보다 말만 앞세운다면 서로가 야속하게 여겨질 것입니다.(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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