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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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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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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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제1독서

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제1독서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6,10-20

형제 여러분,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19 그리고 내가 입을 열면 말씀이 주어져 복음의 신비를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간구해 주십시오.

20 이 복음을 전하는 사절인 내가 비록 사슬에 매여 있어도, 말을 해야 할 때에 이 복음에 힘입어 담대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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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복음

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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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 계속 가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계속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루카 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의 의미는 뚜렷하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이미 죽음과 부활의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도 그러한 맥락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며, 복음을 선포하시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십니다. 헤로데가 교활하지만 막상 힘은 없어 여우와 같다고 하시면서도,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은 여우 같은 헤로데 한 사람의 탓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예언자의 운명임을 받아들이십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박해와 거부를 피하여 도망가는 것이고, 제1독서에서도 나온 표현을 빌린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에페 6,19) 선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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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6,19-20 참조). 이 ‘담대함’은 드러내 놓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 비유를 쓰거나 모호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숨김없이 밝히는 것,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뜻하며,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4,13.29.31 참조), 바오로(9,27.28 참조), 바오로와 바르나바(13,46; 14,3 참조) 등에게 적용됩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바오로가 로마에 잡혀가서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28,31)라고 말합니다.

죽음도 막지 못하는 담대함, 반대를 받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에 예수님께서도, 사도들도 망설임 없이 죽음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살아야 할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담대함을 주시기를 청하여 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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