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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의묵상 및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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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의묵상 및 예식

by 필로테아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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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의묵상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주님 만찬 성목요일 묵상 (바로가기)

 

[ 목 차 ↓(클릭) ]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제1독서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제2독서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복음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발 씻김 예식

매일미사책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 [오늘의 묵상]

이종훈 마카리오 신부님,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국지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작은 형제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빠다킹 신부님) 묵상 보러 가기

교회는 주님 만찬 저녁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한다.

오늘은 성목요일입니다. 이 미사에서 성체성사의 신비와 사랑의 새 계명을 묵상하고, 발 씻김 예식에 참여하며,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성체 보관 장소(수난 감실)로 옮겨 모신 성체 앞에서 밤새 깨어 조배하며, 당신 자신까지 내주신 주님의 사랑을 묵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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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제1독서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2,1-8.11-14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제2독서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23-26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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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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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발 씻김 예식

강론이 끝난 다음에, 사목적 이유로 필요하다면 발 씻김 예식을 거행한다. 봉사자들은 하느님 백성 가운데 선발된 이들을 준비된 자리로 이끈다. 사제는 (필요하다면 제의를 벗고) 각 사람의 발에 물을 붓고 수건으로 닦는다. 봉사자들은 사제를 돕는다. 그동안 아래의 따름 노래들이나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따름 노래 1 요한 13,4.5.15 참조)

◎ 주님이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네.

이렇게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 주셨네.

따름 노래 2 요한 13,12.14.15 참조 ◎ 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드신 다음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말씀하셨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따름 노래 3 요한 13,6.7.8)

◎ 주님, 주님이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하리라.

○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

○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되리라. ◎

 

(따름 노래 4 요한 13,14 참조)

◎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따름 노래 5 요한 13,35 참조)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보고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되리라.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네. ◎

 

(따름 노래 6 요한 13,34 참조)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따름 노래 7 1코린 13,13 참조)

◎ 너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리니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니라.

○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리니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니라. ◎

발 씻김 예식이 끝나면 사제는 손을 씻고 닦는다. 제의를 다시 입고 자리로 돌아온다. 이어서 보편 지향 기도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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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옮겨 모시는 예식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고 나서, 성당의 다른 곳이나 경당에 알맞게 장식하여 특별히 마련한 성체 보관 장소(수난 감실)로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를 모셔 가는 행렬을 한다. 그동안 찬미가 “입을 열어 찬양하세”(마지막 두 절을 남겨 두고)나 다른 성체 노래를 부른다.

 

행렬이 성체 보관 장소에 이르러 거룩하신 성체께 분향할 때 “입을 열어 찬양하세”의 마지막 두 절

“지존하신 성체 앞에”나 다른 성체 노래를 부른다.

 

입을 열어 찬양하세

○ 입을 열어 찬양하세 영광의 성체신비

세상구원 이루시려 흘리신 성혈신비

강생하신 만민임금 당신피 흘리셨네.

○ 순결하신 동정녀가 낳으신 아드님이

말씀의씨 뿌리시며 이세상 사시다가

놀라우신 뜻에따라 구원을 이루셨네.

○ 최후만찬 그날저녁 형제들 모으시어

구약율법 지키시고 만찬음식 드셨네.

열두제자 먹이시려 당신몸을 주셨네.

○ 강생하신 주님말씀 참된빵 성체되고

순포도주 변화되어 거룩한 성혈되네.

오관으로 몰라뵈도 굳세게 믿나이다.

○ 지존하신 성체앞에 꿇어경배 드리세.

묵은계약 완성하는 새계약을 이뤘네.

오묘하온 성체신비 믿음으로 알리라.

○ 낳으신분 나신분께 찬미찬송 드리세.

구원하신 권능영광 영원히 찬양하세.

두분에게 나온성령 같은찬미 드리세.

아멘.

 

 

 

2024년 3월 28일 매일미사 주님 만찬 성목요일 오늘의 묵상

구원 역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파스카 성삼일이 주님 만찬 저녁 미사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 전례의 독서와 복음은 모두 ‘만찬’ 장면을 소개합니다. 제1독서는 구약의 파스카 만찬을, 제2독서는 초대 교회의 만찬을, 복음은 예수님의 파스카 만찬을 소개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권고한 만찬을 기점으로 ‘구약의 파스카’가 시작되었듯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기점으로 ‘신약의 파스카’가 시작된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 복음서가 전하는 만찬 이야기는 ‘사랑’과 ‘섬김’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제자들과의 마지막이 가까워짐을 감지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충만한 사랑을 드러내어 표현하십니다. 사랑은 감출 수 없는 것이기에 언제나 구체적 행위를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발 씻김’이라는 상징적 행위로 ‘사랑은 섬김’으로 드러나야 함을 알려 주십니다.

유다인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덥고 건조한 흙길을 오래 걸어야 하였을 손님을 배려하여 먼저 발을 씻게 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집안의 종이 하던 일을 당신께서 손수하시며 사랑은 섬김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라고 물어보시는데, 그리스 말 성경 본문에는 “깨닫겠느냐?”라는 동사가 먼저 나옵니다. ‘알겠니?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의 의미가 강조되어 있고, 그 답은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로 제시됩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한 것처럼 섬김으로 실천되는 사랑이 우리가 하여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앞에 무릎을 꿇으십니다. 기득권자들의 불의한 폭력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을 배신한 인간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랑은 이제 성삼일 내내 장엄히 기억되고 기념될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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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주님 만찬 저녁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파스카 성삼일’은 전례주년에서 가장 뜻깊고 거룩한 기간이다. 파스카는 건너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음에서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로 들어갔다.

 

교회 안에서 목요일은 예수님의 날이다. 목요일 묵주기도 빛의 신비는 예수님의 공생활, 그분의 선교활동을 요약한다. 그 마지막 단에서 예수님이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음을 묵상한다. 그분의 삶 전체가 성체성사 안에 담겨 있다고 해석된다. 그분의 인생은 한마디로 내어줌이었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하느님 나라에는 여기서 가지고 있던 것 중 하나도 가져갈 수 없거니와 거기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토록 열심히 닦고 쌓았던 믿음과 희망도 필요 없다. 사랑만 남는다. 다 주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하고 죄스러워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재채기처럼 감출 수 없는 거라서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 없다. 그에게 그리고 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뜬금없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계획된 쇼가 아니라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제자 사랑이다.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누는 마지막 만찬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집트 노예 생활을 기적적으로 탈출하고, 죽음의 신을 피할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식사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되시고 가장 비천한 행동을 하셨다. 그게 그분의 제자 사랑이다. 그날만이 아니라 공생활 내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마음이었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그렇게 대하셨다. 그 사랑이 그들을 병고와 마귀의 압제에서 해방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음에서 탈출한 사람이다. 오래전 그날 밤 하느님께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이와 맏배를 모조리 치셨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셨지만(탈출 12,12), 어린양의 피가 묻어 있는 집을 그냥 지나가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은 이들은 죽음을 그냥 건넌다. 이집트 모든 신을 치셨던 것처럼 이제는 예수님의 지독한 제자 사랑이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걸 처 없애버린다. 그런 줄 알고 믿으면서도 자꾸 넘어지고 자주 의심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넘어지고 의심해서 더러워진 발을 씻어주신다. 그리고 우리도 서로에게 그렇게 하기를 바라신다. 삼위의 하느님이 서로 완전히 사랑해서 하나가 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서, 이웃의 더러워진 발을 지적하지 않고 덮어주고 씻어줘서 하나가 되기를 바라신다. 제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발을 씻으셨던 것처럼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호소하신다.

예수님, 잘 못하고 잘 안되지만, 저를 살려주신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니 하겠습니다. 그의 더러워진 발을 가려주고 덮어주고 씻어주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할 수 있고, 하기 싫지만 주님이 바라시니 합니다. 심장에 암이 생겼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니 그런 게 생길 틈이 없는 거겠죠. 아끼다가 똥 되지 않게, 주님이 주신 사랑의 능력을 실컷 써먹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성체 안에 담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제 더러운 발을 씻으시는 아드님을 잊지 않게 일깨우소서. 아멘. (이종훈 마카리오신부님, 구속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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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일 예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건너감(Pascha)입니다!

가톨릭교회 각종 전례 시기 가운데, 절정이자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성탄 시기도 큰 축제이지만, 이를 훨씬 능가하는 중요한 시기가 성삼일입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집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사흘간의 교회 전례를 우리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 극도의 고통과 번민, 수난을 통과하시고, 죽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신 후, 마침내 영광스러운 부활로 건너오신 파스카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가장 본질이요 핵심, 전부입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그리스도 신자로서 다른 그 어떤 신앙 행위나 신심 행위보다 몇백 배, 몇천 배 중요한 이 성삼일 예식에 만사 제쳐놓고 반드시 참석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풍성한 가치와 의미, 중요성을 내포한 예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미사와 현양 제대 앞 성체 조배,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 예식과 십자가의 길 기도, 그리고 마침내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이 모든 예식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건너감(Pascha)입니다.

이번 성삼일 기간 우리는 또다시 건너가고, 넘어서고, 극복하는 노력을 거듭해야겠습니다. 나를 넘어 이웃에게로, 이웃을 넘어 주님께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어제의 죄와 허물로 가득한 부끄러운 나를 넘어 주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죄사함을 받아 말끔해진 나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끝끝내 용서하지 못해 생지옥을 살고 있는 나를 넘어 통 큰 용서를 통한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새로운 나로 건너가야 하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누군가로부터 서비스를 받고, 케어를 받는 나에서 서비스를 베푸는 나, 극진히 섬기는 나, 이웃의 발을 씻겨주는 나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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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복음은 얘기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표시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더러운 발까지 씻어주시는 사랑이고, 그 발로 도망칠 제자들의 죄까지 용서해주시는 사랑이며, 아무리 죄를 짓고 도망쳐도 포기치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이고 그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는 안 나옵니다. 대신 두 번째 독서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를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데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는 요한복음엔 없지만 공관복음에는 모두 나오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또 하나의 표시가 바로 성체성사이고, 이때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함은 남김없이 다 바치는 사랑입니다.

 

주다 주다 더 줄 것이 없으니 목숨까지 다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목숨까지 다 내어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체성사는 남김없이 다 내어주는 사랑이지만 다른 한편 당신의 사랑을 남기시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목숨까지 남김없이 다 내어주시지만 당신이 돌아가신 뒤에도 남을 사랑의 표시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우리 사랑의 표시로 유언과 유산과 유물을 자식들에게 남기지만 주님께서는 당신 사랑이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재현되도록, 곧 끝까지 계속되도록 성체성사를 남기신 겁니다.

그런데 재현되도록 그리고 끝까지 계속되도록 성체성사를 남기셨는데 그것이 우리 안에서 재현되지 않고 그래서 계속되지 않는다면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어도 주님 사랑은 우리 안에서 끝까지 계속되지 않겠지요.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자들을 위해서만 남기신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이라고 하셨는데 그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람들에서 우리가 제외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람들이라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그 주님의 사랑을 재현해야 할 것이고,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그런데 만일 우리가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주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이 아니고, 끝까지 남는 사랑도 아니며 그야말로 끝난 사랑입니다.

기억과 기념은 주님의 사랑을 재현케 하는 것이고, 주님 사랑이 내 안에서 계속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죄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 지향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것이고,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끝나지 않고 미래에도 계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이 끝나는 순간 사랑도 끝나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도 끝납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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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제 예닮기도중 한 대목으로 주님 사랑을 고백하며 강론을 시작합니다.

성주간 수요일 삼종기도후 교황님의 가르침의 주제는 “인내”였습니다. 인내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공합니다. 말그대로 인내의 사랑입니다. 교황님은 참으로 주요한 덕이 인내이며 우리가 인내의 부족을 정직하게 인정하자고 말씀했습니다.

 

인내는 필요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인내로 부름받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내했다면 신자들은 참으로 인내하도록 불림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인내하는 본보기를 관상하라고 교황님은 우리를 격려했습니다. 인내는 제 “예닮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강조됩니다.

 

“주님,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아멘.”

 

오늘은 성주간 목요일입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저녁미사로부터 시작된 성삼일 전례는 부활주일의 저녁기도로 끝납니다.

오늘의 강론 주제는 “참사람의 영원한 본보기-그리스도 예수님-예닮의 여정”입니다.

옛 어른의 오늘 3월28일 말씀도 참사람이 되는데 유익한 도움이 됩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나를 잃고 남을 잃는 길이다. 만장일치란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다산)

“군자(君子)는 조화를 이루되 같음을 강요하지 않고(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小人)은 같음을 강요하면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동이불화同而不和)”(논어)

 

하나하나 고유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며 이런 생각을 지닌 이들이 군자요 참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사람이 되는 방법을 배웁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누구나 선물로 받은 인생이요 참사람이 되는 평생과제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참사람이 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하고 힘든 공부도 없습니다. 저절로 참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과 더불어 부단한 분투의 수행과 노력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사랑밖에 길이 없습니다. 역시 사랑의 선택, 사랑의 훈련, 사랑의 습관화입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참사람의 영원한 본보기는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에 살 희망이 생깁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항구할 때 비로소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사람, 참사람의 실현입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우리 삶의 영원한 본보기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드러납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참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감동을 선사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새삼 사랑하라 주어진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선물하신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 사랑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그의 규칙서 두 가운데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마라.”(성규4,21)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께서는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성규72,11-12)

 

둘째, 서로 섬기십시오.

서로 섬기는 사랑, 겸손한 사랑, 순수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도대체 무릎을 꿇고 사람들 발을 씻어 주는 하느님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지요! 하느님 친히 예수님을 통해 그 사랑의 절정을, 겸손의 절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사랑의 영원한 모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며 남겨주신 참 좋은 선물, 참 사랑, 참 사람의 본보기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답고 거룩한 장면도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감동과 더불어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마냥 부끄럽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적 사랑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입니다. 새삼 깨닫는 사실은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의 삶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하닮의 여정”, “예닮의 여정”임을, 또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생명으로 넘어가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주님의 진짜 유언입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종파를 초월해 모든 인류에게, 특히 각계 각층 지도자들은 물론 나라나 세계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간곡한 당부가 섬김의 사랑입니다. 살아갈수로 날로 하느님의 집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짐을 깨달을 때 섬김의 사랑에 박차를 가할 수 뿐이 없습니다. 새삼 제가 늘 강조하는 바, 깨어 내 인생여정을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로 압축하여,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하여 어느 시점(時點)에 위치해 있겠는가 확인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서 거품이나 환상이 걷힌 본질적 삶의 깊이를, 하늘 나라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파스카의 미사전례를 사랑하십시오.

사랑의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면서 참 좋은 최고의 선물, 둘을 남겨 주셨습니다. 하나는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드리는 겸손한 사랑, 섬김의 사랑의 모범이요, 이어 하나는 이 거룩한 파스카 미사전례입니다. 탈출기에서 강조되는 공동체 전례인 파스카 축제입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자유에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입니다. 결코 잊어선 안되는, 반드시 파스카 전례를 통해 늘 기억을 새롭게 해야 하는 파스카 해방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온 공동체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이스라엘 공동체 형성에, 신원확립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이 바로 끊임없이 거행되는 파스카 축제였습니다. 구약의 파스카 축제는 신약의 파스카 축제로 이어집니다. 과거의 파스카 해방 사건을 늘 현재화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 파스카 축제 인생을 살게 하는 파스카 미사전례은총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바로 파스카입니다. 파스카 예수님의 참 좋은 파스카 축제의 미사전례요 바로 제2독서가 이를 입증합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적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문득 “나를 잊지 마세요(forget me not)”라는 물망초(勿忘草)의 꽃말이 생각납니다.

삶은 기억과의 전쟁입니다. 늘 세상 끝날까지 주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미사를 봉헌하라는 것입니다.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만들어 주는, 구원의 기억을 늘 새롭게 하는 이 거룩한 공동미사전례의 은총입니다.

파스카 미사축제의 은총이 우리 모두 파스카의 꽃, 사랑의 꽃으로 살게 합니다.

 

“사람은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 사랑의 꽃이다

그만의

색깔, 향기, 크기, 모양으로

평생

끊임없이

세상 떠날 그날까지

날마다 새롭게 폈다 지는

사람은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 사랑의 꽃이다(2022.6.9.).”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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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여름방학이 되면 제 바로 형님과 함께 시골에 가곤 했습니다.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또 배를 탄 뒤에 한참을 걸어가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계신 시골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먼 거리였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도착하고 나서는 너무 신났습니다. 개울가에 가서 놀기도 하고, 고양이, 개, 소 등의 동물 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올챙이 잡고 개구리 잡던 것 역시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지요. 이렇게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지요. 온몸에 달라붙는 모기떼로 인해 괴로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상황이 뭐가 재미있을까 싶습니다.

당시 시골에는 제 또래도 없었고 그래서 유일하게 놀 수 있는 대상은 같이 간 형뿐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면, 아마

“저는 그런 곳에서 못 살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긴 게임에 빠진 아이의 스마트폰을 빼앗아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화가 나서 불을 질렀다는 아이도 있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뭐가 재미있냐?’고 하겠지만, 제 기억 속에서 시골 체험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뭐라 하셨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이분들의 음성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옛날의 몇 장면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 선명한 기억을 지금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모든 것이 자기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순간이고 미래를 잘 사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화려한 것, 멋진 것보다 오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장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장면에는 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지금 내 자리도 먼 훗날 기억에 오래 간직될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을 지냅니다. 이날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됩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음에도 제자들을 향해 또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나눠주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 사랑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느님께서 무릎을 꿇고 인간의 발을 씻겨 주시는 모습에서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전해집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전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오늘의 전례를 통해 사랑을 다시금 바라보고 또다시 그 사랑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힘으로 더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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