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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일 매일미사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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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5월 2일 매일미사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목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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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일 매일미사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목요일 오늘의 묵상

5월 2일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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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일 매일미사 목요일 제1독서

5월 2일 제1독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7-21

그 무렵 7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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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일 매일미사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목요일 복음

5월 2일 매일미사 복음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9-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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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일 매일미사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목요일 오늘의 묵상

5월 2일 매일미사 오늘의묵상

어제에 이어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도, 유다인들의 ‘옛 계명’과 그리스도인들의 ‘새 계명’이 대조됩니다. 독서는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새롭게 믿게 된 이들이 더 이상 유다인들의 외적 관습을 지킬 필요가 없음을 밝힙니다.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복음은 유다인들의 옛 전통과 율법을 완성할 새로운 계명으로 ‘사랑’을 제시합니다. 인간은 율법의 준수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특별히 이 말씀은 지금까지의 ‘비유’(참포도나무와 가지)와 달리 갑자기 명령형이 사용되고 직접 화법으로 강조됩니다. 그리고 이때 쓰인 동사 ‘사랑하다’(‘아가파오’)는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의지적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구원에 이르는 길로 제시한 사랑은 상대를 위하여 ‘죽는 것’, ‘목숨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저 가만히 멈춘 상태로 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그 사랑의 본질에 다가가는 여정을 뜻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상대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주고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때, 오히려 그 사랑은 온전히 살아나고 자신도 구원됩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준 만큼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실존하는 가장 큰 힘이며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려 주시고, 그 이유도 말씀하여 주십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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