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본문 바로가기
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5. 31.
반응형

2024년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반응형

 

2024년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제1독서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독서

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섰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9,19-21

그 무렵 엘리야는 산에서 내려와

19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반응형

2024년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복음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반응형

2024년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6월 15일 매일미사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율법을 “맹세하지 마라.”라는 가르침으로 확장하십니다. 맹세 자체를 금지하시면서 거짓 맹세를 못하게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맹세는 자신이 진실함을 보증하려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안다면, 맹세 행위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느님을 욕되게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누구도 어떤 진리에 대해서 하느님을 걸고 맹세할 만큼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만일 내가 한 말에 오류가 있다면, 내가 한 맹세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하느님을 욕되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약속에 대해서도 맹세해서는 안 됩니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나약하고 간사한지 기억한다면, 내일의 일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맹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26,34-35)라고 맹세합니다. 이 무책임한 맹세는 거짓 맹세로 바뀝니다.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마르 14,71). 맹세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반대로 맹세를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세상에 어떤 것도, 자기 자신까지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없음을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달려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맹세 대신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단순하게 대답하며 모든 것을 주님 손에 맡겨야 하겠습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