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9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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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9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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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9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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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제1독서

2024년 9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1-9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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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복음

2024년 9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복음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그때에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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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9월 4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여러 문제를 알고 있었고 또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에게 물은 내용들도 있기 때문에, 코린토 1서와 2서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먼저 나오는 문제가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서간 뒷부분에서 성령의 은사나 전례에 대하여 말할 때도 공동체의 일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이 어떤 문제로 갈라졌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이들은 바오로를 추종하거나 아폴로를 추종하고 있으니, 그들 나름대로는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저마다 분명한 소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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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와 아폴로는 하느님의 밭인 교회의 신자들을 돌보며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무리도 어쩌면 교회라는 밭을 열심히 가꾸려고 하는 사람들이었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일이 그들을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그들에게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히거나 쾌락에 몰두하여야 육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느님이 아닌 인간에게 눈길이 머물러 있을 때, 인간의 업적만 생각하고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1코린 3,6)이심을 알아보지 못할 때, 쉽게 육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 이름을 지우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임을 알아볼 때, 다른 모든 사람 안에서도 이를 알아볼 수 있을 때, “시기와 싸움”(3,3)이 사라지고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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