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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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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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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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제1독서

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4,1-5

1 형제 여러분,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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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복음

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3-39

33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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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9월 6일 매일미사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단식을 하여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루카 5,34) 문제는 지금 우리가 신랑과 함께 있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자주 단식을 하였던 것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은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랑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미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고 메시아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내일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도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6,5)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미 구원의 때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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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도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장 참조). 사도행전에서도 사람들은 단식합니다(13장 참조).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라는 종말론적 긴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다르다고, 단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고, 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지금도 신랑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요한만큼이나 열심히 그날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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