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본문 바로가기
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10. 5.
반응형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반응형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제1독서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15-29

그 무렵 15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16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17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18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19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20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21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22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3 그가 이 말을 마쳤을 때, 어떤 유다 남자가 나오더니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24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자를 쳐 죽였다.

25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

26 이렇게 그는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7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28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성읍에 남겨 둔 채 산으로 달아났다.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반응형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복음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반응형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11월 20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이번 한 주 동안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의 여정을 복음으로 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수난하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예수님의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독백과도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루카 19,42)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19,42).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도시가 평화를 알지 못하고 평화를 볼 눈이 없음에 깊이 탄식하십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입니다(이사 32,17 참조). 그리고 정의는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마땅한 흠숭을 드리고, 내 이웃을 그 존엄에 맞갖게 존중해 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러나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을 없애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지키려 합니다. 평화와 어울리지 않는 수단으로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1219년, 십자군 전쟁의 역사 속 가장 치열하였던 시기에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 하나가 이슬람 진영 한복판에 찾아들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그는 이 전쟁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며 하느님의 뜻은 오로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형제적 삶을 사는 데 있음을 선포하고자, 무장하지 않은 ‘평화의 사절’로 이 전쟁에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오늘날까지 ‘거룩한 땅’ 이스라엘에 머무르며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 있는 성지들을 돌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평화의 발걸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