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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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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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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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30,19-21.23-26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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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복음

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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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12월 6일 매일미사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복음서는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감정을 묘사하는데, 연민, 곧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기적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열쇠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라는 표현은 그리스 말로 ‘창자가 움직이다.’라고 표현됩니다. ‘뱃속, 창자’는 구약의 전통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우리말에서도 ‘마음’을 뜻하지요. 창자를 뜻하는 옛말 ‘애’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가리키면서 ‘애가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 등으로 간절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그저 상대를 가엾이 여기시는 감정에 그치시지 않고 시달리고 기가 꺾인 이들을 위하여 행동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 느끼시는 연민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시작입니다. 삶 전체를 내주는 헌신으로 이어지는 연민이지요. 우리는 고통받는 이들을 볼 때 연민을 느끼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하거나 부담스러워서 그냥 눈을 감아 버리지는 않나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듯이 우리에게도 당신의 일을 함께 하자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로 성령의 힘과 권한을 주셨고, 성체성사로 당신과 일치하는 가운데 그 힘을 새롭게 하십니다. 수확을 위한 일꾼을 꼭 사제 성소자나 축성 생활 성소자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헌신하려면 지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먼저 필요합니다. 거저 받은 주님의 연민과 사랑에 힘입어 주님의 일을 함께할 준비가 되었나요?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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