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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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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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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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제1독서

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제1독서

나는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11,1-11

1 형제 여러분, 아무쪼록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부디 참아 주십시오.

2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

3 그러나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4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

5 나는 결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6 내가 비록 말은 서툴러도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든 일에서 갖가지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7 여러분을 높이려고 나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대가 없이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8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려고 여러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바람에 그들을 약탈한 꼴이 되었습니다.

9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었습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10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걸고 말하는데, 아카이아 지방에서는 나의 이러한 자랑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11 내가 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아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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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5

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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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희년 전대사 지정장소

 

 

2025년 6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기도는 하느님께 나의 필요를 알려 드리고 그에 응답해 주시도록 설득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그분 눈앞에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는 시편의 기도에서 잘 드러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이미 당신께서는 모두 아십니다”(139[138],1-2.4).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미 다 아신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예컨대 엄마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 주기 때문에 아이가 아무 표현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신뢰하고 또 가깝게 여기는 이들에게 하는 일상적인 말들을 하느님께도 해 봅시다. “와, 참 좋아요!” “감사해요!” “멋지네요!” “사랑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할까요?” 기도가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면 이렇게 일상적으로 진솔하게 나누는 대화도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출발점은 ‘우리 아버지’(마태 6,9 참조)입니다. 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사람은 형제들의 필요에도 응답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체험한다면 그분의 다른 자녀인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주님의 기도 전반부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해 주시기를 청하기보다는 내가 그분의 도구가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기]”(6,9)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사명으로, 자기 존재 안에 아버지의 얼굴을 드러내면서 그 얼굴을 믿을 만한 방식으로 그려 내는 일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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