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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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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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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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제1독서

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제1독서

그날 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2,37-42

그 무렵 37 이스라엘 자손들은 라메세스를 떠나 수콧으로 향하였다. 아이들을 빼고, 걸어서 행진하는 장정만도 육십만가량이나 되었다.

38 그 밖에도 많은 이국인들이 그들과 함께 올라가고, 양과 소 등 수많은 가축 떼도 올라갔다.

39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반죽으로 누룩 없는 과자를 구웠다. 반죽이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쫓겨 나오느라 머뭇거릴 수가 없어서, 여행 양식도 장만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40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이다.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바로 그날, 주님의 모든 부대가 이집트 땅에서 나왔다.

42 그날 밤,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셨으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도 대대로 주님을 위하여 이 밤을 새우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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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복음

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4-21

그때에14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16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8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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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7월 19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이사야서 42장 1-4절에 나타난 ‘주님의 종’에 관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사목 대상은 갈대처럼 약하면서 그중에서도 으깨지고 부서지고 짓눌린 이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소외된 이방인들(‘민족’이라는 낱말은 ‘이방인’으로 번역할 수도 있음)입니다. 그분께서는 짓눌린 이들, 소외된 이들을 받아들이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벌을 받은 자로 여겨졌던 병자들도 받아들이셨습니다. “부러진 갈대”, “연기 나는 심지”(마태 12,20)에서 우리는 부러졌다는 사실과 불이 거의 꺼졌다는 사실에 집중하지만, 그분께서는 아직 잘려 나가지는 않았다는 것, 아직 불기가 조금은 남아서 연기라도 난다는 사실에 마음을 두십니다. 그분께서는 아주 작은 것을 소홀히 하시지 않고 그것이 자라서 커다란 무엇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인내하며 기다리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먼저 믿고 희망을 두셨기에 그 갈대와 심지, 곧 이방인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부족함과 죄보다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음을,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보십니다. 나를 믿으시고 나에게 희망을 걸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 내 이웃을 향하는 나의 시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결점에 있습니까, 아니면 가능성에 있습니까? 나를 믿어 주시고 희망을 두시는 그분의 시선을 바라보고 느낄 때, 자신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시선도 그분의 것처럼 바뀔 것입니다. 우리도 희망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12,21). 아멘. (김태훈 리푸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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