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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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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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묵상

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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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2,6-15

형제 여러분,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9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10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권세와 권력들의 머리이십니다.

11 여러분은 또한 그분 안에서 육체를 벗어 버림으로써,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5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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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복음

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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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묵상

2025년 9월 9일 매일미사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기념일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서 열두 명을 뽑아 사도로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을 뽑으신 데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자 하는 뚜렷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많은 지파가 소멸하고, 남은 지파도 서로 합쳐져 겨우 두 지파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이라는 상징적 숫자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회복시키시어 이스라엘 구원에 관한 하느님 약속을 실현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두 제자들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주십니다. 사실 첫 번째 사도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적용되는 이 직분을 제자들에게도 주시면서 제자들을 당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주십니다. 또한 여기에는 당신의 구원 사업을 혼자가 아니라 제자들도 함께 하기를 바라시며, 이 사업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열두 사도를 선택하신 것에는 큰 뜻이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시고 이 일이 하느님 뜻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열두 사도 가운데는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 있고, 다른 제자들도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점차 드러냅니다. 완전하신 하느님 뜻에 따른 선택이지만 우리 눈에는 완전해 보이지 않습니다. 완전함에 대한 우리의 개념과 그분의 개념이 다른 것은 아닐까요?

이 열두 사도의 부족함과 잘못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시거나 그들을 포기하시지 않고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이로써 사랑이신 하느님의 완전하심이 오히려 더 드러납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점차 그 사랑을 닮아 갑니다. 하느님의 완전하심은 사랑이 아닐까요? (김태훈 리푸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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