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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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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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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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제1독서

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14-21

형제 여러분, 14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20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21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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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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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10월 22일 매일미사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말씀은 조금 불편하게 들립니다. 세상을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난데없이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12,51)라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 당신의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기에,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는 글자 그대로의 뜻만이 아닌, 어떤 다른 뜻이 더 있어 보입니다.그런 점에서 우리는 살면서 이따금 쓰는 표현인 “좋은 게 좋은 거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 말들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에 조금 문제가 있더라도 넘어가는 것이 낫다거나 그냥 적당히 미지근하게 묻어가는 것이 편하다는 뜻으로 쓰이지요. 그러나 이는 신앙인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잘못된 태도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도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라오디케이아 교회가 회개할 것을 요청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3,14-22 참조). 이러한 태도는 특히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마음은 활활 태워 없애야 합니다.재물과 하느님을 함께 섬길 수 없듯이,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본래 지니고 있던 세상의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한 집안의 식구가 서로 갈라서듯 갈등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배척하고 미워하는 갈등이 아니라, 더 좋은 것 더 옳은 것을 선택하는 데에서 오는 ‘성장통’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평화가 있습니다. 언제나 나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잠길 수 있도록 굳건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것을 다짐해 봅니다.(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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