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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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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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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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여라.

▥ 요한 묵시록의 시작입니다. 1,1-4.5ㄴ; 2,1-5ㄱ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2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5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2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3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4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5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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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복음

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복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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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11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눈먼 이와 그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복음을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였지만, 복음을 두 번, 세 번 읽고 묵상하다 보니 ‘다시 본다’는 표현이 복음에서 여러 번 강조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눈먼 이는 본디 앞을 볼 수 있다가 어떤 일로 눈이 멀게 되었기에 예수님께 ‘다시’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그에게 굳이 “다시 보아라.”(루카 18,42)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먼 이가 말한 ‘다시’는 ‘예전과 같이’라는 뜻이지만, 예수님의 ‘다시’는 예전과 달리 새롭게 보라는 뜻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처럼 새롭게 다시 보게 된 눈먼 이는, 전에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사람들도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날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뜹니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가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니라 새로운 날이 되도록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언제나 나와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굳건한 믿음을 고백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구원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줍니다. 비록 어제가 조금 어두웠다 해도 오늘 다시 하느님과 함께 숨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의 은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하느님과 함께 날마다 새롭게 보고, 새롭게 들으며, 새롭게 희망하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쁨 가운데 우리는 분명 우리를 빛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허권범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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