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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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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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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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제1독서

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제1독서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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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

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5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14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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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2월 20일 매일미사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오늘 화답송은 참된 회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사실 회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뜻밖에도 ‘자존심’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너무 죄송해서 고해성사조차 볼 수 없다.”라는 말 속에는, 참된 뉘우침보다는 상처 입은 자존심이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자녀가 죄책감과 당혹감에 휩싸여 집을 뛰쳐나갔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돌아와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부모님이 나를 받아 주실 리 없다.”라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가로막지만, 정작 부모는 마음이 상하였을지언정 자녀를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여전히 사랑하고 기다립니다. 이런 끝없는 자책이 과연 부모에 대한 참된 미안함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쩌면 그 자책은 여전히 자신의 기준으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교만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책을 속죄로 착각하지만, 사랑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해명이나 보상이 아니라 ‘나’ 그리고 ‘나의 사랑’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이 전하는 단식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봅니다. 단식은 그저 ‘보여 주기 위한’ 행위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이 정도 뉘우치면 되겠지.” 하는 식의 거래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단식하여 남겨 둔 것을 기꺼이 필요한 이에게 나눌 줄 아는 사랑의 실천, 곧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표현이어야 합니다. 사순 시기의 여러 결심에 앞서, 오늘 복음 환호송을 마음에 깊이 새겨 봅니다.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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