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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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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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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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제1독서

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제1독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3,12-15ㄱ.17-18

사랑하는 여러분,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15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8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이제와 영원히 그분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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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복음

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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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논쟁에서 밀린 채 포도밭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였다는 것도 알고 있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올무를 씌우려고(마르 12,13 참조)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을 끌어들입니다.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 제국에 기대어 권력을 누리는 이들이어서 황제 쪽으로 기울기 쉬웠지만, 이와 달리 바리사이들은 황제에게 납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이, 한 사람을 넘어뜨리고자 잠시 손을 맞잡습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말로 올무를 씌우려”(마르 12,13)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 칭찬으로 덫을 윤나게 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대답해 보십시오.’ 질문은 하나입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허락됩니까?’ ‘그렇다.’라고 하면 이스라엘 민중을 잃고, ‘아니다.’라고 하면 황제의 반역자로 몰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이 쓴 가면, 곧 ‘위선’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은화에는 아마 티베리우스 황제의 얼굴과, 신성을 암시하는 칭호가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12,17). 제국의 화폐를 쓰려면, 그 체계가 요구하는 의무도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더 깊은 차원을 여십니다. 동전에는 황제가 새겨졌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삶 전체, 몸과 마음과 정신 모두입니다(신명 6,4 이하 참조). 신앙은 이해관계에 따라 요령을 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전인적 응답’입니다. 신앙은 삶 자체의 근원을 묻는 마지막 물음이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요?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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