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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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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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제1독서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제1독서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7-9.12.16-19

7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8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9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12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16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17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18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19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복음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2026년 7월 16일 매일미사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일화에서 인간 삶의 부조리를 떠올립니다. 신들의 노여움을 산 시시포스는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면 바위가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이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과 비슷한 모습입니다.카뮈는 이 의미 없는 반복과 허무함을 극복하려면 삶의 허무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거나 상황을 부정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하라고 초대합니다.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마주할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한 시시포스’를 마음에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도 누구보다 이러한 인간의 처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접근은 카뮈와 달랐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주님께서는 우리를 가혹한 운명의 산에 홀로 남겨 두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곁에 머무르시며 쉼의 자리를 마련하시고, 그곳이 더 이상 형벌이 아닌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몸소 그 형벌 같은 삶을 살아 내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인간은 참된 행복, 그 궁극적 ‘좋은 삶’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카뮈가 꿈꾸던 ‘행복한 시시포스’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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