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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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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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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제1독서

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1,13-24

형제 여러분, 13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15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16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18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21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나는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3 그들은 “한때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24 그리고 그들은 나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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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복음

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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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읽을 때 자신이 마리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마르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지상에 사시는 동안은 당신께 음식을 마련하여 드릴 사람들이 필요하셨습니다. 천국에는 마르타가 할 일이 없으리라고 말하지만, 현세의 삶에는 어제 복음에 나왔던 강도를 만난 사람처럼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먼저 나의 일상생활을 해결하는 것부터 적지 않은 근심거리입니다.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하였다고 부러워하고만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쩌면 마르타의 일도 좋은 몫입니다. 전에 어떤 곳에서 방 이름을 정하는데 제가 ‘예수님께서 머무셨던 마르타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을 집에 모실 수 있었던 것은 매우 큰 특전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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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는 스스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이고는, 이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잊은 듯합니다.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바쁘다 하여도, 예수님께서 드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를 예수님과 긴밀히 결합하여 줍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잊지 않는다면, 우리 집을 찾아 주시는 주님을 위하여 애쓰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그 수고는 좋은 몫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수고로 천국에 이르게 될 때, 그때는 세상의 무수한 마르타들도 수고를 멈추고 “빼앗기지 않을”(루카 10,42) 몫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셔 들일 수 있는 사람, 예수님께 음식을 만들어 드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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