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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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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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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

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2,1-2.7-14

형제 여러분, 1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2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8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11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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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복음

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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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였고,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셨는데, 우리는 지금도 기도하는 법을 묻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기도를 아직 다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진심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친밀함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는 모든 이를 형제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려면, 먼저 내 안에서부터 그 나라를 가로막는 모든 요소를 없애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때로 우리에게 작은 겟세마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루카 11,2)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오도록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할 때에도 아버지의 나라를 바란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바란다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저에게”가 아니라) “저희에게”(11,3) 양식을 주시기를 청한다면 오늘 양식이 없는 이에게 양식을 마련하여 주어야 하고. 우리에게 하루하루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 아버지이심을 믿고 내일을 맡겨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되기를 바란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이”(11,4)를 용서하여야 합니다. 우리 형제의 죄는 하느님께만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용서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면 자신이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싸워야 합니다. 날마다 바치다 보니 쉽게 느껴지는 이 기도는 아직도 배워야 할 기도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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