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4월 17일 매일미사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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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4월 17일 매일미사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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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7일 매일미사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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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7일 매일미사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1ㄴ-8

 

1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 독실한 사람 몇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내고

그를 생각하며 크게 통곡하였다.

3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4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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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7일 매일미사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35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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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7일 매일미사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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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도대체 무엇이 하느님의 뜻일까요? 오늘 복음은 당신을 믿는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영원’으로 옮겨진 히브리 말 ‘올람’은 단순히 미래와 연결된 시간적 개념만을 뜻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충만을 뜻합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충만함을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이를 위하여 하늘에서 ‘생명의 빵’으로 예수님께서 내려오셨음을 선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충만을 체험하도록 움직인 이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은 교회의 성장과 함께 일어난 공동체 내부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일곱 부제가 선발되었으며, 그들 가운데 하나였던 스테파노가 순교하였음을 전합니다. 특별히 오늘 독서는 스테파노의 장례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 박해를 이야기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박해는 좌절과 끝이 아니라 교회의 단초를 견고히 다지는 시작임을 선언합니다.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복음을 전하고, 이로써 하나도 잃지 않고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하느님의 뜻이 온 세상에서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역경과 박해, 걱정과 갈등 없이 사는 것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사도들처럼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경이롭고 찬란한 기쁨을 느끼며 사는 것, 그 충만함이 곧 영원한 생명이며 영원한 삶입니다. 복음의 ‘잃고 싶지 않다’(39절 참조)는 표현은 다른 말로 하면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37절 참조)는 의미이고,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임을 알고 믿을 때 이러한 충만함(영원)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에게서 그 누구도 버림받지 않습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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