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 주일미사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오늘의 묵상
본문 바로가기
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4월 21일 주일미사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3. 26.
반응형

2024년 4월 21일 주일미사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오늘의 묵상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聖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한 날이다. 성소 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하였다. 이날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소를 계발하고 육성하는 일에 꾸준한 기도와 필요한 활동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를 일깨우는 기회가 되고 있다.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성소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이름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치유하시며, 부활하신 성자의 영광을 빛나게 하십니다. 흩어진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모으시어,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아버지께 감사드립시다.

반응형

 

 

2024년 4월 21일 주일미사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제1독서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4,8-12

그 무렵 8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반응형

 

 

 

2024년 4월 21일 주일미사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1-2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반응형

 

 

 

 

2024년 4월 21일 주일미사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복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18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반응형

 

 

2024년 4월 21일 주일미사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오늘의 묵상

부활 제4주일의 복음은 ‘착한 목자’에 대한 긴 담화의 결론 부분에 해당합니다. 오늘 복음은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이를 부연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선언 뒤에는 그 ‘착함’의 이유가 설명되는데,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목숨”(그리스 말 ‘프쉬케’)은 오늘 본문에 여러 차례 등장할 정도로 강조된 단어인데, ‘숨’ 또는 ‘호흡’을 뜻하며, 인간의 영혼, 생명, 활력 등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자기 숨과 영혼을 내주어 상대를 대신 살게 함을 뜻합니다. 그와 반대로 ‘목숨을 내놓지 않는 목자’는 “삯꾼”입니다. 삯꾼은 자기가 살고자 양들을 이용하고 불필요해지면 내다 버립니다. 그가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등장한 “나는 착한 목자다.” 다음에는 ‘앎’에 대한 내용이 소개됩니다. ‘안다’(그리스 말 ‘기노스코’)라는 말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배우는 인지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고, 상대의 본질을 섬세하게 깨달아 이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행위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서 제2독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셨는지를 생각하여 보라고 권고합니다. 특별히 오늘 제1독서에는 작은 반전이 등장합니다. 착한 목자는 사랑하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만, 동시에 그 착한 목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목숨을 내놓는 목자는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시기에 착한 목자 본문을 봉독하는 이유입니다. 양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맡겨진 양들을 하나하나 알고 생명을 바칠 정도로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의 숨이 양들의 숨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 이 ‘착함’만이 목자가 가지는 진정한 힘이며 권위가 될 수 있습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