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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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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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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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

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

네가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1-11

1 요나는 매우 언짢아서 화가 났다.

2 그래서 그는 주님께 기도하였다.“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3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4 주님께서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말씀하셨다.

5 요나는 그 성읍에서 나와 성읍 동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하였다.

6 주 하느님께서는 아주까리 하나를 마련하시어 요나 위로 자라오르게 하셨다.그러자 아주까리가 요나 머리 위로 그늘을 드리워그를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 주었다.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7 그런데 이튿날 동이 틀 무렵,하느님께서 벌레 하나를 마련하시어 아주까리를 쏠게 하시니,아주까리가 시들어 버렸다.

8 해가 떠오르자 하느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보내셨다.거기에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9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아주까리 때문에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그가 “옳다 뿐입니까?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고 대답하니,

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11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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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복음

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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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2025년 10월 8일 매일미사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에 두 가지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는 독서에 나오는 ‘요나의 기도’입니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요나 4,2-3). 요나는 하느님께 투정 부리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죽는 것이 낫다고 한탄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왜 제자들은 주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을까요? 아마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가지신 것이 없으셨지만 모든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셨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목숨까지 내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이백 데나리온의 돈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고, 그것도 한 아이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이 없으신 가운데에서도 나눔으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시면서도 부유하시고, 머리 둘 곳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면서도 늘 유쾌하시고 다른 이에게 온유하신 예수님의 모습, 그리고 어느 때라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청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요나의 기도’와 ‘주님의 기도’, 이 둘은 ‘기도’라는 말에서는 같지만, 기도의 지향점은 다릅니다. 요나의 기도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기도는 주님을 향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이찬우 다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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