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벤투라 축일 중세 신학 거장이 전하는 균형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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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말씀

보나벤투라 축일 중세 신학 거장이 전하는 균형의 지혜

by 필로테아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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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벤투라 축일 중세 신학 거장이 전하는 균형의 지혜

보나벤투라 성인

7월 15일은 성 보나벤투라의 축일입니다. 중세 가톨릭 신학과 영성의 거장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중세 가톨릭 신학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교회와 학계에 깊은 보탬과 영향을 주도록 이끄셨습니다. 보나벤투라의 신학적 사상과 삶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리와 영적인 성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나침반와도 같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프란치스코회의 총봉사, 추기경, 교회 박사로 활약한 그는 신앙과 이성, 관상과 실천의 '조화'를 통해 현대인에게도 깊은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요. 본 글에서는 그의 삶과 업적, 그리고 보나벤투라 축일의 의미를 통해 인생의 방향을 모색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영적 메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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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벤투라 축일의 깊은 의미

기적에서 시작된 이름

보나벤투라는 1221년 이탈리아 바뇨레조에서 조반니 디 피단차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중병에 걸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성 프란치스코에게 중재 기도를 청했고, 기적적으로 병이 나은 어린 보나벤투라는 이후 성 프란치스코가 건넨 "오, 좋은 일이 올지어다!(O, buona ventura!)"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보나벤투라'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요. 그의 삶 전체가 이 축복처럼 하느님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보나벤투라 축일은 이 기적을 기념하며, 신앙이 삶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음을 되새기는 날이기도합니다. 신앙과 운명의 교차점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학문과 수도 생활의 여정

현대인에게 기적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위기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 예상치 못한 순간의 깨달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철학과 신학을 파리대학교에서 공부하며 학문적 기반을 닦았는데요. 1243년에는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합니다. 그는 1250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강의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시기를 통해 학문적 성취의 시간이자, 이성과 신앙의 균형을 다진 시기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는 학문이 신앙을 벗어날 때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신학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완성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인 ‘레젠다 마요르’를 집필하며 프란치스코회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은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 보나벤투라
보나벤투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인 ‘레젠다 마요르’를 집필하며 프란치스코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기여했습니다.

 

 

보나벤투라 축일과 수호성인

7월 15일, 보나벤투라 축일은 신학자, 농부, 직조공 등 다양한 이들의 수호 성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삶은 학문과 영성, 리더십과 겸손의 조화라고 대표할 수 있는데요. 오늘날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 '균형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성인입니다. 우리는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요?

보나벤투라 축일은 중세의 신비주의자와 현대의 독자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보나벤투라는 1482년 시성되고, 1588년 교회 박사로 선포되면서 신학자와 신비가의 표본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그는 신학자, 농부, 짐꾼, 직조공의 수호 성인으로,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책, 십자고상, 성체현시대가 그의 학문, 신앙, 영성을 더 깊이 상징하는 상징물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보나벤투라 축일은 하느님안에서 지성과 영성의 균형의 중요성안에서 우리가 각자의 분야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을지 고민하게 합니다.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보나벤투라의 삶과 사상은 하느님안에서 현대인들에게 여러 생각해볼 거리들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성과 신앙, 개인과 공동체, 관상과 실천의 조화를 강조하며, 삶의 균형을 찾으라고 초대하는데요.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중심을 잃습니다. 보나벤투라의 축일을 맞아 잠시 멈춰 서서, 삶에서 하느님을 향하고 있는지, 일상에 가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 그는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신자들 뿐이 아니라, 모든이에게 물음을 던져주는데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보나벤투라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과학과 영성의 대립이 심화된 현대 사회에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성과 영성의 통합)

둘째, 관상만이 아닌 ‘행동으로 이어지는 신앙'을 중요시합니다. (실천적 신앙의 중요성)

셋째, 보나벤투라의 플라톤적 사유는 예술과 문학에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창조적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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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나벤투라와 프란치스코회가 알려주는 평화의 중요성

폭력과 증오는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분열과 적대만을 심화시킬 뿐이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시대적 갈등 속에서, 성 보나벤투라와 프란치스코회의 모범은 그 어떤 때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보나벤투라는 종종 프란치스코회의 ‘제2의 창립자’라 불릴 정도로 그 정신을 충실히 이어받았고, 평화와 일치의 삶을 살아간 인물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중병에 걸렸지만 성 프란치스코의 전구로 치유되었는데, 그 경험은 그의 인생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1243년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해,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공부하며 학문적으로도 탁월한 성과를 이뤘습니다.

후에는 교회 박사로 선포되었으며, 수도회 내에서의 분열과 긴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의 삶은 실제로 교회와 사회에 평화를 심는 지적, 사도적 모범이 되었습니다. 특히 갈등과 혼란이 격화된 오늘날, 우리는 그의 삶과 신앙에서 다시금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보나벤투라 축일을 기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저서를 읽거나, 프란치스코회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난과 겸손, 창조적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이 바로 현대적인 의미의 '보나벤투라(좋은 일)'를 만드는 길입니다.

보나벤투라 축일

프란치스코회의 정신은 언제나 ‘평화’에 방점을 두고 있는데요. 그 기반에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깔려 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이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한 인물이며, 그의 삶은 단지 교회사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오늘날 낙태, 생명 경시, 혐오와 편견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우리 친생명(pro-life) 진영은 그의 모범처럼 진실을 사랑 안에서, 평화를 통해 전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는 이러한 정신을 잘 요약해 줍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 있는 곳에 희망을…”
우리는 이 기도를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조롱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태아의 생명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바로 그 순간, 성 보나벤투라와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야 합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자신의 존엄과 상태를 모르는 사람은, 어떤 것도 제대로 된 가치로 바라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존엄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태아의 생명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만나는 사람에게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 시대에 생명과 존엄, 참된 평화를 이루어 가실 수 있도록,  그들이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 임을 몸으로 전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보나벤투라 명언

 

보나벤투라의 출생과 운명을 바꾼 여정들

어린 시절과 프란치스코회 입회

보나벤투라의 삶은 기적에서 시작되었지만, 그의 선택이 그를 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파리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그는 날카로운 지성과 깊은 신앙을 키웠습니다. 1243년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한 그는 단순한 수도자가 아니라, 수도회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1250년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257년 36세의 나이에 프란치스코회 총봉사로 선출된 그는 젊은 나이에 막중한 책임을 떠안았습니다.

그의 삶은 현대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전환점에서 운명을 바꾸었는가? 보나벤투라는 학문과 영성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식이 하느님을 향한 길이라 믿었고,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학문과 가치의 조화를 고민하게 합니다.

교회와 사회를 위한 헌신

1273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는 그를 알바노의 주교이자 추기경으로 임명했습니다. 1274년 제2차 리옹 공의회에서 동서방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던 중, 그는 53세의 나이에 선종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화려한 결말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헌신의 연장선이었습니다. 보나벤투라 축일은 그의 이러한 헌신을 기리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보나벤투라의 신학, 지성과 신앙의 조우

신비와 이성의 조화

보나벤투라의 신학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는 이성이 ‘신앙의 빛’ 없이 완전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신학은 ‘하느님의 은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아, 만물이 ‘하느님에게서 나와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에마나티오’와 ‘회귀’의 철학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는 삶의 모든 순간이 신성한 목적을 향한다는 깨달음입니다.

보나벤투라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성’에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창조와 구원의 중심에 놓으며, 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가톨릭 신앙을 품고 살아가는 많은 신자들의 영성에도 중요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이성과 감정, 물질과 영성을 분리해서 생각하고는 하는데요. 보나벤투라는 이를 조화롭게 연결하며, 진정한 지혜는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서 나온다고 가르칩니다. 그의 신학의 정중앙에는 ‘하느님을 향한다’는 한가지 축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의 영적인 철학은 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보나벤투라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이다

보나벤투라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이다
보나벤투라의 신학의 핵심은 하느님께 나아가기위해 삶의 모든 중심을 그리스도로 삼는 것 이었습니다.

 

보나벤투라의 신학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의 중심으로 삼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느님이자 인간, 스승이자 친구로 묘사하며, 구원과 창조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저서 하느님께 이르는 영혼의 순례기는 영혼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6단계를 설명하며, 관상과 실천의 조화를 강조합니다. 이 책은 영적 여정을 위한 좋은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그리스도 중심’ 사상은 현대인에게도 여러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나의 삶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보나벤투라 축일은 ‘그리스도’라고 답하며, 신앙여정에서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진정성을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보나벤투라 교회의 등불이 되다

어린 시절의 기적을 뒤로하고, 조반니 디 피단차, 즉 성 보나벤투라는 중세 유럽 지성의 심장이었던 파리대학교에서 학문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 파리대학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재발견과 함께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정립하려는 치열한 학문적 논쟁의 용광로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철학과 신학을 수학하며, 당대의 가장 뛰어난 지성인들과 교류하고 사상을 연마했습니다. 1243년, 그는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며 지적인 탐구와 영적인 헌신을 결합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는 청빈과 겸손, 복음적 삶을 강조하는 수도회였고, 세속 학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이 두 가지 길을 조화롭게 걸어 나갔습니다. 1250년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당대 신학의 핵심 교재였던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주석하며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강의는 깊이 있는 통찰과 명료한 해설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1257년에는 놀랍게도 프란치스코회 총봉사(총장)로 선출되어, 무려 17년간 수도회 전체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프란치스코회는 급격한 성장과 함께 내부적인 분열과 규율의 이완이라는 난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수도회의 창립 정신을 재확립하고, 규율을 바로잡으며, 내부 갈등을 수습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의 지도력은 지성과 영성, 그리고 실천적 지혜가 어떻게 한데 어우러져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방어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보나벤투라 축일은 바로 이러한 지성과 신앙의 아름다운 조화를 통해 한 시대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는 학문적 성취가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영적 통찰이 학문적 깊이를 더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인물입니다.

 

‘세라핌적 박사’ 보나벤투라, 그 이름이 남긴 영혼의 울림

중세의 신비와 이성이 교차하는 자리에, 성 보나벤투라 성인이 계십니다. 감성과 이성, 기도와 학문, 관상과 실천이 마주치는 그 자리에서, 그는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여정을 글로, 삶으로 살아낸 인물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였던 보나벤투라는, 신비주의적 열정과 스콜라 철학의 논리 사이를 조화롭게 가로지르며 성서와 교부들의 전통을 따라 하느님을 향한 내면의 여정을 묵상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영혼의 여정》은 감각에서 출발해 이성을 넘고, 마침내 신비적 합일로 나아가는 여섯 단계의 길을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한 철학이나 학문의 설명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밀한 만남을 향한 영혼의 나아감이며, 기도하는 이가 걸어야 할 실제 여정입니다.

《삼중의 길》에서 보나벤투라는 고전적인 영성의 세 단계인 정화, 조명, 결합의 과정을 통해 인간 영혼이 점차 하느님의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제시합니다. 또한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통해 그는 가난과 겸손, 순명과 사랑이라는 복음적 덕행을 성인의 삶 안에서 밝혀내며,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살아 있는 증거로 전합니다.

교회는 그를 ‘세라핌적 박사(Doctor Seraphicus)’라 부릅니다. 이는 그가 하느님 사랑의 불꽃으로 불타올랐던 자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신비와 이성을 결코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둘의 교차점에서, 인간 지성이 감히 넘보는 가장 높은 지혜가 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저술은 이 시대의 독자에게도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지금,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프란치스코회와 보나벤투라, 그 영원한 유산

성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회에서 ‘두 번째 창립자’로 불립니다. 1257년 총봉사(총장)로 선출된 그는, 급속도로 확장되던 수도회 내의 혼란과 분열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질서와 일치를 회복했습니다. 성인의 지도 아래 프란치스코회의 이상은 단지 초기의 감정적 열정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 안에서 지속 가능한 제도와 영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는 프란치스코의 이상을 왜곡 없이 계승하면서도, 지나친 엄격주의와 해이한 온건주의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나르본의 회헌은 수도생활의 규율과 이상을 명확히 하며, 프란치스코회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단지 행정가가 아니라 깊은 신앙인이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공식 전기인 《Legenda Maior》를 집필함으로써, 수도회의 영적 정체성을 신학적으로 확립했고, 이후 수세기 동안 프란치스코회뿐 아니라 교회 전체의 영적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속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의 리더십은 깊은 교훈을 줍니다. 진정한 리더란 단지 체계를 유지하는 이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공동체를 그 빛 속으로 이끄는 사람임을 말입니다. 성 보나벤투라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복음적이고도 지혜로운 답변을 건네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학문의 끝이 아니라, 영혼이 떨리는 시작입니다.” 그의 이 고백은,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도 다시금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초대입니다.

보나벤투라 주교학자 기념

보나벤투라에게서 배우는 하느님을 찾는 삶

영성과 실천의 균형

성 보나벤투라(1217?~1274)는 “영혼의 박사(Doctor Seraphicus)”로 불리는 중세 가톨릭의 위대한 신학자이자 신비가, 그리고 사목자였습니다. 그의 삶과 사상은 오늘날 우리가 하느님을 찾고자 할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제시해 줍니다. 특히 그는 영성과 실천의 조화를 이룬 삶을 통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구체적인 여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느님을 찾는 길, 두 개의 발로 걷다

보나벤투라가 강조한 하느님을 향한 삶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찾는 길에서 두 가지 발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내면을 향한 침잠(沈潛)’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향한 실천’입니다. 이는 곧 ‘관상(contemplatio)’과 ‘활동(actio)’의 조화로운 통합을 뜻합니다.

그는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여정(Itinerarium mentis in Deum)』에서 하느님을 향한 길은, 진정한 체험과 사랑, 겸손 속에서 열린다고 강조합니다. 철저한 묵상과 기도의 삶 속에서 그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갈망했지만, 동시에 그 은총을 세상에 전하고자 했습니다. 즉, 하느님과의 친밀함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열매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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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보나벤투라의 영성은 ‘빛’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그는 하느님의 빛이 인간의 이성과 감성, 지성과 감각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을 비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참된 영적 성장은 단지 감정적 열정이나 논리적 사고의 산물이 아닌, 전 존재가 하느님께 열려 있는 상태에서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영향을 받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과정은 ‘정화-조명-일치’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고 보았는데요. 이 여정은 인간 내면의 침묵 속에서, 고요한 기도 안에서, 세상의 소음을 잠재우는 훈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나벤투라는 우리에게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지혜를 회복하라고 권면합니다.

 

실천, 교회와 세상 속의 봉사

그러나 보나벤투라는 침묵의 관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회의 총봉사로서, 실질적인 리더십탁월한 조직력을 발휘했습니다. 단지 하느님과의 내밀한 일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치를 세상 속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프란치스코회는,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공동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수도자들에게 단지 금욕이나 기도만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병자들을 위로하며,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곧 ‘살아 있는 신앙’이라고 보았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인에게도 이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타인에게로 흘러가야 한다는 보나벤투라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영성과 실천의 균형이 오늘날 의미하는 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나벤투라의 삶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우선하며 살고 있는가? 바쁜 일상 속에서 기도는 자리를 잃어가고, 신앙은 ‘행사’나 ‘모임’ 속에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반대로 내면에만 몰두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 역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실현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보나벤투라는 묵상의 깊이와 실천의 넓이를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이는 곧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삶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빛을 내면에 받아들인 자는, 그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사명을 함께 지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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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의 의미, 균형의 영성을 기억하며

매년 7월 15일, 교회는 성 보나벤투라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을 향한 여정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성찰하는 기회입니다. 관상과 실천, 내면과 외면, 고요와 행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삶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밸런스를 맞추도록 성령께서 이끌어주십니다. 침묵 속에서 말씀을 듣고, 세상 속에서 말씀을 살아내는 것 — 그것이 보나벤투라가 남긴 ‘하느님을 향한 길’이며, 오늘 우리가 다시 걸어야 할 신앙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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