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사도 축일 의심에서 확신이 된 현대 사회 길잡이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요한 20:25) 이 고백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던 '의심 많은 도마'는 역설적으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가장 확고한 신앙 고백을 올리며, 현대 사회의 수많은 의혹과 불확실성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심 많은 도마'가 굳건한 믿음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더 나아가, 그는 왜 건축가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을까요? 의심과 건축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이 성 토마스라는 한 인물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되었는지, 12제자 중 성 토마스 사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성 토마스 축일의 기원과 깊은 의미
토마스 축일은 매년 7월 3일로 가톨릭 교회 전례력에서 성 토마스 사도의 축일로 지정된 날입니다.
‘보고 믿음’에서 ‘보지 않고 믿음’으로의 전환을 기억하게 하는 날입니다.
이 날짜가 정해진 배경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있습니다. 6세기경 토마스 사도의 유해가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에데사(현재의 터키 우르파)로 이관된 날이 바로 7월 3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 토마스 사도의 유해 이관을 기념하는 이 축일은 인간의 의심이 어떻게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초석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검증되지 않은 진리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을 거부하는 현대인들에게 특히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의심 많은 토마" 라는 별명은 때때로 조롱 섞인 뉘앙스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정직한 영적 탐구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원래 토마스 사도의 순교일은 12월 21일로 전해졌으나, 유해 이관이라는 신앙적 사건이 더 큰 의미를 얻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7월 3일이 공식 축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는 그의 신앙 유산이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여 전해졌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10월 6일에 토마스 축일을 기념하는데, 이러한 차이는 동서 교회의 전통과 역사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교회 모두 토마스 사도를 부활의 증인이자 선교의 선구자로 존경하며 기립니다.
성 토마스 축일이 지니는 현대적 의미는 의심과 확신 사이의 조화를 찾는 데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무작정 믿으라고 강요당하는 현실' 속에서, 토마스의 정직한 의심은 오히려 건강한 비판 정신의 모델이 됩니다. 그의 축일은 맹목적인 추종이 아닌, 체험을 통한 깊은 확신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의심 많은 토마, 부활의 증인으로 거듭나다
'의심 많은 토마' 라는 별명은 성 토마스 사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이 별칭이 때로는 비판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실제로는 하느님을 향한 열망과 진지함의 본보기가 됩니다. 토마스의 이 별명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이야기는 의심 그 자체가 아니라, 의심에서 확신으로의 극적인 신앙 여정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따르면,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언했을 때 토마스는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요한 20:25) 하고 선언했습니다.
이 기록은 토마스를 신앙이 부족한 제자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공포에 숨어 있을 때, 그는 오히려 눈으로 상처를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는 강렬한 선언을 했습니다. 이는 맹목적인 충성이 아닌, 체험적 확증을 요구하는 현대적 사고의 선구적인 발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주일 후,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토마스의 요구를 정확히 아시고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순간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8)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가장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 중 하나입니다. 토마스의 의심은 결과적으로 가장 굳건한 신앙 고백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시며, 토마스의 체험을 통해 더 큰 교훈을 전하셨습니다.
의심 많은 토마스의 이야기가 현대인들에게 주는 교훈은, 의심이 약점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정직한 갈망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체험을 통한 확신이 더 견고한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토마스는 의심하면서도 열린 마음을 잃지 않았고, 그 결과 가장 깊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회의주의와 비판적 사고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토마스의 사례는 건전한 의심이 오히려 더 단단한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진실을 갈구하는 성인의 마음, 성 토마스
성 토마스 사도는 '쌍둥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우리 모두의 모습을 비추어 줍니다. 요한복음은 토마스 사도를 세 번이나 '디디무스'(쌍둥이)라 부릅니다. '토마스(Thomas)'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 '토암'(쌍둥이)에서 왔다는 사실! 그런데 정작 그는 누구와 쌍둥이였을까요? 성경은 이 미스터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을 따르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으나, 다른 사도들과 달리 믿음의 여정 속에서 의심과 고민을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의 과정이었습니다.
성경은 토마스가 예수님께 질문하는 장면을 세 차례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요한 14,5)라고 묻는 모습은 진지한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라고 답하셨습니다. 토마스의 이러한 진지함은 오히려 깊은 진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의 증인, 굳건한 신앙의 고백
토마스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겠다고 한 일화입니다(요한 20,24-29). 그러나 이 사건은 그의 회의주의를 드러내기보다는, 결국 완전한 신앙으로 이끄는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의심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가 요구한 증거를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요한 20,27). 이에 토마스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느님이시여!" (요한 20,28)라고 고백하며, 복음서에 기록된 가장 온전한 신앙 고백을 남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20,29)는 구절은 토마스를 책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신자들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는 토마스처럼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를 통해 더욱 굳건한 믿음을 얻습니다.
인도 선교와 순교, 신앙의 열정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 토마스 사도는 인도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오늘날 인도 첸나이에 있는 산 토메 성당에는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그를 "인도 교회의 사도"로 공식 선포하셨습니다(1972년). 이는 그의 신앙이 단순한 의심을 넘어, 목숨을 바칠 정도로 확고한 사랑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토마스 사도의 가장 놀라운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인도 선교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제자들 중 가장 멀리까지 복음을 전한 사도 중 한 명이었습니다.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 남부의 말라바르 지역까지 도달한 그의 선교 여정은 1세기 인물로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선교의 확장성을 보여주었으며,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토마스가 인도에서 수행한 선교 활동은 현지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깊이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인도 케랄라 주의 '토마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오늘날까지도 자신들의 신앙이 토마스 사도에게서 직접 유래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1972년 교황 바오로 6세는 토마스 사도를 '인도 교회의 사도이자 수호성인'으로 공식 선포했습니다.
이는 토마스의 인도 선교가 역사적 근거를 지닌 사실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토마스로부터 우리는 미지의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위대한 개척자의 정신을 배우게 됩니다. 그의 발자취는 의심에서 비롯된 확신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 그 자체였습니다. 이처럼 성 토마스 축일은 한 사람의 의심이 어떻게 광대한 대륙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기적이 될 수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인도 기독교의 뿌리가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하느님을 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토마스의 인도 선교는 현대 선교학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그는 문화적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고 현지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상호문화적 대화와 종교 간 이해의 훌륭한 모범 사례로 여겨집니다.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는 인도에서 여러 교회를 세웠고,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기존 종교 세력의 반발을 샀고, 결국 순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조차도 복음 전파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의심 많았던 토마스 사도의 인도 선교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차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복음의 힘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그의 발자취는 오늘날까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정체성과 자부심의 근원이 되고, 물리적 거리와 문명의 장벽을 뛰어넘는 하느님을 전한 위대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토마스 사도가 건축가들의 수호성인이 된 놀라운 이야기
토마스 사도가 건축가들의 수호성인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어떤 이는 묻습니다. "왜 성 토마스가 건축가의 수호성인인가요?" 그 해답은 외경인 '도마행전 (Acts of Thomas)'에 숨어 있습니다. 이 전승은 실화라기보다는 영적 교훈을 담은 우화에 가깝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는 예수님의 명령으로 인도에 파견되어 인도-파르티안 왕국의 곤도파레스 1세 왕을 위해 궁전을 짓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왕은 토마스에게 궁전 건축을 위한 막대한 재물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 모든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하늘에 궁전을 짓는' 영적 건축을 선택합니다.
왕이 돌아와 건축 상황을 묻자, 토마스는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당신이 죽는 날에 그 궁전을 볼 것입니다." 분노한 왕은 토마스를 감옥에 가뒀지만, 뒤이어 일어난 기적이 모든 것을 바꿔놓습니다. 죽었던 왕의 동생이 부활하여 천국에서 토마스가 지은 화려한 궁전을 보았다고 증언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토마스가 실제 건축을 했다기보다는, 영적 의미에서 '하늘에 궁전을 짓는'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상징합니다. 즉, 그는 물질적인 건물을 짓는 대신, 사랑과 자비로 천국의 건물을 세웠습니다. 영원한 복음의 기초를 놓는 데 헌신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 때문에 토마스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목수, 측량사, 석공 등 모든 기술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게 되었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그가 직각자나 건축 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사도였다는 의미와 실제 건축 기술과의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성 토마스 축일은 그가 의심의 벽을 허물고 믿음의 건축을 이룬 사도임을 상기시킵니다. 현대의 건축가들과 기술자들이 여전히 토마스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 토마스 축일이 현대인에게 주는 깊은 통찰력
토마스 축일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날카롭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현대인에게 주는 가치는, 그가 보여준 '정직한 의심'의 태도에 있습니다. 오늘날의 정보 과잉 시대에서,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확증편향이 만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척'하면서 살아가고, SNS 알고리즘에 의존해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선 아무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토마스의 정직한 의심은, 이런 세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하느님 안에서의 ‘건전한 비판 정신’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확인하려’ 했고, 그 과정 끝에 ‘믿었습니다’. 토마스는 믿음이란 명제를, 그저 수용이 아닌 존재 전체로 만나는 감각으로 바꾸었는데, 여기서 믿음을 '느낌'이나 '분위기'가 아닌, 상처 입은 손을 직접 만지고, 옆구리를 들여다보는 체험으로 접근한 확실한 사도였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축일은 '맹목적인 신앙의 정당화'보다 '깨어 있는 의심'과 '지성적인 믿음'의 사도로 우리의 영적 여정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SNS 시대, '의심 많은 토마스’가 왜 주목받는가?
첫째, 성 토마스는 현대의 집단적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부활을 증언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체험을 고집했습니다. 이는 동조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독립적 사고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SNS의 확산과 함께 나타나는 집단 광기나 여론몰이 현상을 생각해보면, 성 토마스의 태도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둘째, 토마스 사도의 모습은 체험적 지식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성 토마스는 간접적 정보가 아닌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오늘날 정보 과잉 시대에 진짜 지식과 가짜 정보를 구별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사실이 아닌 정보들로 모함을 하는 경우도 많은 오늘날 직접 확인해 팩트체크를 하고 믿음에 이르는 토마스 사도에게서 '체험'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사용이 일상이 오늘날 '좋아요'의 노예가 되어 집단 최면에 걸리기 쉬운 시대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점에서 성 토마스사도는 고고한 등대처럼 홀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예'라고 외쳐도, 그는의 '음… 과연? 글쎄요?'라는 약간은 반골기질이 섞인 고백을 할 용기. 그의 이런 태도는 왠지 모르게 성 토마스의 고결한 지성과 통찰력을 닮아 보입니다.
토마스는 소문이나 풍문 따위에는 코웃음 쳤습니다.
그는 오직 '체험적 지식'의 가치를 맹렬히 옹호했습니다. "남이 씹어준 정보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듯이, 그는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는 팩트 체크를 감행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는 오늘날, 토마스는 고급 필터를 소유한 탐정 같았지요. 엉뚱한 정보에 현혹되어 이리저리 휘둘리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내면의 목소리로 진실을 꿰뚫어 보려는 능력을 지니셨을 겁니다.
또한, 놀랍게도 토마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고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 고집불통이 아니었습니다. 의심의 베일을 걷어낼 준비가 늘 되어 있었던 겸손한 사도였죠. 예수님께서 홀연히 나타나셨을 때, 그는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기꺼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아뿔싸, 내가 틀렸군!" 하며 기쁘게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고, 겸허히 자세를 낮추어 주님께 고백합니다. 극단적인 편 가르기와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토마스는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과연 자신의 생각을 바꿀 용기가 있습니까?" 성 토마스는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우리에게 지적 유연성을 자극합니다.
셋째, 토마스의 변화 과정은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의심했지만 닫힌 마음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는 기꺼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면입니다.
넷째, 토마스의 건축가 상징은 창조적 회의주의의 가치를 전합니다.
그는 기존의 물리적 건축물보다 새로운 차원의 '영적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이는 혁신과 창의성이 때로는 기존 틀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토마스 축일은 또한 현대의 글로벌적인 문화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의 인도 선교는 문화적 제국주의가 아니라, 상호 존중에 기반한 소통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현대의 다문화 사회에서 이는 매우 현실적인 교훈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토마스의 이야기는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것이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확신'임을 보여줍니다.
의심 많은 제자였지만 가장 확고한 신앙 고백자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축일은 이처럼 의심과 확신, 개인과 공동체,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지혜에 대해 우리엑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초대합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대를 초월한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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