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월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24년 2월 10일 설 명절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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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월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24년 2월 10일 설 명절 토요일

by 필로테아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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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0일 토요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설 명절

2024년 2월10일 토요일 매일미사

오늘은 음력 1월 1일로, 조상을 기억하며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뿐임을 잊지 말고,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살아갑시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보러가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작은형제회) [강론] 보러가기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빠다킹신부님) [복음묵상] 보러가기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성 베네딕도 요셉수도원) [복음묵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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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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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독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4,13-15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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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주님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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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º 오늘은 한 해가 새로 시작하는 설날입니다.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의 첫날을 맞이합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들은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여야 할지 알려 줍니다. 무엇보다 º 먼저 서로 축복을 빌어 주면 좋겠습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사제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라고 이르십니다. 주님께서는 사제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은혜와 평화를 베푸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으면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하나의 방법은 아론처럼 다른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이웃의 성화를 위해서,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을 청하여야 합니다. º 두 번째로 이 모든 시간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제2독서에서 야고보는 생명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전합니다. 우리 삶에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우리 힘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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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간과 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께서 바라시고 허락하시기를 청하면서, 우리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일 것입니다. 세 번째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우리의 마지막 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르니 늘 깨어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이가 없습니다. 언제 세상을 떠나도 좋을 만큼 오늘 하루를 열심히 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지만, 역설적으로 마지막을 옆에 두고 살아가 는 종말론적인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기억합니다. 올 한 해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함께하고, 진정한 기쁨과 깊은 평화 속에 머무르기를 빕니다. 또한 소망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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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신부님

 

 "행복의 근원으로부터"

 

설 명절은 우리가 우리의 시원을 깊이 성찰하는 날입니다. 시원(始原)이란 우리의 시작과 근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원 始原 : 시작(始作)되는 처음. 문화(文化)가 피어나지 않고 자연(自然) 그대로의 상태) 그러니 우리 존재와 삶이 어떤 근원에서 시작되었는지 돌아보고, 우리의 존재와 삶이 시작된 근원이 어디인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그리고 나의 행복의 근원은 어디인지, 하느님이 나의 행복의 근원인지 불행의 근원인지 돌아보는 날입니다. 사실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 욥처럼 자기가 태어날 날을 저주하고, 자기를 배었던 어미의 태를 저주하고 마찬가지로 자기를 생겨나게 하신 하느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기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금 내가 행복하다면 내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고, 내가 왜 이렇게 행복한지,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누가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했는지 돌아보고 감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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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始原)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행복을 근원으로부터 찾지 않고 자기 혼자 기를 썼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불교는 행복도 불행도 자기 업보라고 얘기하고,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행복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비롯하여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행복의 근원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복 주시는 분이라고 믿고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행복합니다. 오늘 민수기의 모세는 그래서 이렇게 백성에게 권고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와 생명이 그 근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했다면 한 해의 시작과 하루의 시작도 그 근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하고, 하느님께서 복 주시기를 빌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게만 복 주시기를 빌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먼 데 있는 사람까지 하느님께서 복 주시기를 빌 것입니다. 사실 자기 행복만을 위해 비는 사람은 자기 행복에 급급한 사람이고 그러기에 자기도 행복하기 어렵거나 겨우 자기만 행복할 것이고, 멀리 있는 사람까지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이 크고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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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올해 목표도 복음 전파이고 행복 전파입니다. 같이 사는 공동체 형제에게 눈 뜨자마자 미사 드리면서 행복을 빌고, 우리 식당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도 같은 행복을 빌어주겠습니다. 음식 맛에 끌려 우리 식당에 오지 않고 사랑에 끌려 우리 식당에 오고 오면 행복해지니까 우리 식당에 오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창피한 계획이지만, 올해는 복을 빌어주지 못할망정 저주는 비록 작은 저주일지라도 하지 않겠습니다. 작은 저주란 염병할 놈이나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고 욕하는 것처럼 누가 진짜 불행해지기를 바라고 욕하는 그런 큰 저주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저 자주 정치인들을 보고 빌어먹을 놈들이라고 작은 저주를 퍼붓고, 자기밖에 모르는 얌체 족속들에게 못된 놈이라고 지나가는 욕을 퍼붓는 것인데 비록 그런 작은 저주와 지나가는 욕일지라도 올해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새해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 많이 받으셔서 부디 자신도 행복하고, 그 행복을 이웃과 나눠 이웃도 행복하게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빕니다.(김찬선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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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신부님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자녀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삽시다-

"주여, 당신은 대대로 저희의 안식처가 되시었나이다.”(시편 90,1)

 

오늘 화답송 시편 90장은 제가 좋아하는 시편이고 방금 부른 윗 화답송 후렴도 참 좋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시편 기도도 은혜롭고 위로와 힘이 됩니다. 설날 아침 미사에 잘 어울립니다.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잘되게 하소서.”(시편 90,14.17)

오늘은 하느님의 축복이 넘치도록 주어지는 설날입니다. 설날이자 연중 제3주일이고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기도 합니다. 반갑고 고맙게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9년 9월 30일 자의 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통해 매년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지내도록 제정하셨습니다. 작년 하느님의 말씀 주일 때 교황님의 다음 강론 대목도 여전히 호소력을 지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거짓 우상들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예상을 폭로하며, 지나치게 인간적인 하느님의 모습을 허물고, 그분의 참다운 얼굴과 그분의 자비를 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믿음을 기르고 새롭게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영성생활의 중심에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두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지 우리에게 계시하는 말씀을 중심에 둡시다.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말씀을 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참 기쁨은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이 인간의 본질임이 다음 시편이 입증합니다. "내 주여, 내 기쁨은 당신 뜻을 따름이오니, 내 맘속에 당신 법, 말씀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 40,9)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참으로 축복받은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자녀’ 두 말마디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본질적임을 깨닫게 합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는 말씀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 없이,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 공부보다 더 중요한 평생 공부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날 미사 중 강론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자녀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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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야 할 꽃자리 하늘나라는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그 구체적 방법을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소개합니다.

첫째, 감사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감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하느님 찬양입니다. 하느님 찬양이 살맛 나는 인생을 만듭니다. 설날 저녁 성무일도시 후렴 둘의 곡도 참 흥겨웠습니다.

“우리 힘 하느님을 기꺼이 찬양하자.”, “초승에 한보름에 우리네 축제일에 하느님을 기꺼이 찬양하자.” 하느님 찬미, 찬양은 영혼의 본능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 찬미, 찬양해야 영혼이 삽니다. 영혼 건강에는 하느님 찬미, 찬양이 제일입니다. 아침성무 시편기도 시 마음에 와닿은 시편구절입니다.

"주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 145,1-2) 찬양의 기쁨, 찬양의 행복으로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계속되는 축복 속에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은혜로운 설날 미사 중 당신 사제를 통해 우리 모두 하나하나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축복 중의 축복이 평화의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매일의 삶에서 평화의 증인이 되도록 하자”는 어제 교황님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당신 자녀들에게 복 주시는 일이며, 주님의 복덩어리인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감사와 찬양으로 응답하며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가 자발적 기쁨으로 행해야 할 우리의 우선적 마땅한 의무입니다.

둘째, 겸손하십시오.

섬기십시오. 겸손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뒤따라야 할 섬김의 삶입니다. 섬김의 사랑으로 표현되는 겸손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랑으로 평생 주님 섬김의 배움터 삶의 자리에서 한결같이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겸손하십시오. 자만하지 마십시오. 무지한 이들이 교만하지 참으로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지혜로운 이들은 겸손합니다. 매사 세상에, 세상 사물에 집착함이 없이 초연합니다. 이탈의 참자유와 행복을 누립니다. 오늘 제2독서 야고보 사도의 가르침도 이와 일치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런 인간의 실상을, 진상을 아는 자가 진정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알아갈수록 주님을 닮아 지혜롭고 겸손한 삶입니다. 이래서 예닮의 여정에 항구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열쇠의 답입니다.

 

셋째, 깨어 사십시오.

준비하십시오. 유비무환입니다. 막연히 깨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날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주님을 기다리며 맡은 바 책임에 충실하며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하루하루 오늘 이렇게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될 것이요 천상탄일의 선종의 복된 죽음일 것이니 내일은 전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참으로 주님께 신뢰와 희망, 사랑을 둔 신망애의 하느님 자녀들은 하루하루 깨어 기쁘게 삽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우리가 깨어 살 것을 촉구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주님인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언젠가 살아야 할 행복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행복하게 하늘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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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못살면 내일도 못 삽니다. 바로 깨어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며,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주어진 바 거룩한 책임을 다하며 하루하루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노파심에서 거듭 당부합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아니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새삼 ‘감사와 찬양’, ‘겸손과 섬김’, ‘깨어있음과 준비’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 역시 하루하루 날마다 죽을 때까지의 영성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깨어 기다리며 준비하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마침 가톨릭 평화신문 」에 나온 ‘산다는 것’(김용해)이란 묵상시(默想詩)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니 이제 알게 되네요 세상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남보다 더 높아지려는 그 욕심과 집착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나이가 들고 죽음을 보면서 이제 깨닫게 되네요 세상 산다는 것은 사랑이란 것을. 서로 아끼고 섬기고 서로 나누고 도우면서 그렇게 사랑으로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것을.”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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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음력 1월 1일로, 조상님을 기억하면서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입니다. 어떤 분은 "또 한 살 더 먹는구나." 라면서 슬퍼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두를 뛰어넘어서 또 새해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더불어 나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해 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릴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해인 오늘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덕담을 나누는데, 과연 주님께서는 어떤 덕담을 우리에게 전해주실까요? 책을 읽다가 미국에서 15년 동안 인류학을 가르친 어느 대학교수의 인상 깊은 체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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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학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요즘의 대학생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발표도 거의 하지 않고, 책도 미리 읽어오지 않고, 교수를 만나러 오지도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학창 시절과 다른 학생들의 이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수 생활을 한 지 7년 만에 맞이하는 안식년에 할 획기적인 결심을 세웁니다. 다시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새내기 대학생이 된 교수님은 1년 동안 기숙사에 살면서 강의를 듣고 과외활동하는 등 여느 대학생들과 똑같이 지냈습니다. 어떠했을까요? 교수 때는 학생들이 수업 준비를 제대로 안 해 온다고 생각했는데, 학생 입장이 되어 보니 여러 과목에서 동시에 내주는 자료를 다 읽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학생들은 시간 관리를 하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진짜 알게 되면 더는 그를 증오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는 진짜 알지 못하면서 퍼붓는 혐오의 말과 행동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혐오와 대립과 갈등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닐까요? 앞선 교수처럼 역할을 바꿔서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는 데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요? 분명히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될 것이고, 이런 헤아림에서부터 사랑이 울려 퍼지는 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작은 바로 '나'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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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복음을 통해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라는 덕담을 전해주십니다. 어떤 준비이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입니다. 그 준비는 바로 사랑의 실천에만 있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함께 살 수 있는 사랑을 해야지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을 세상에 펼칠 수 있어야만 했습니다. 올해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면 어떨까요? (조명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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