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월9일 매일미사 오늘의묵상(2024년) 연중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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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월9일 매일미사 오늘의묵상(2024년) 연중 제5주간 금요일

by 필로테아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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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9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연중 제5주간 금요일

2월 9일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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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보러가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작은형제회) [강론] 보러가기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빠다킹신부님) [복음묵상] 보러가기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성 베네딕도 요셉수도원) [복음묵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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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였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1,29-32; 12,19

29 그때에 예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다가

실로 사람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났다.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들에는 그들 둘 뿐이었는데,

30 아히야는 자기가 입고 있던 새 옷을 움켜쥐고 열두 조각으로 찢으면서,

31 예로보암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열 조각을 그대가 가지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제 내가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 내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32 그러나 한 지파만은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내가 뽑은 예루살렘 도성을 생각하여 그에게 남겨 두겠다.

12,19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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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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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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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오늘 전례의 모든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라야 함을 전합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진 사건을 전하는데, 그 이유는 솔로몬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11-13 참조)

"듣는 마음"을 청하였던 솔로몬의 마음은 점차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고, 결국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에 (11,2; 신명 7,1-4 참조) 귀를 닫았습니다.

오늘 화답송의 말씀처럼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지 않은 결과로 이스라엘은 두 왕 국으로 갈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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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화답송 내용입니다.)

◎ 나는 주님, 너의 하느님이니 너는 내 말을 들어라.

○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올렸다. ◎

○ 내 백성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나를 따르지 않았다. 고집 센 그들의 마음을 내버려 두었더니,

그들은 제멋대로 제 길을 걸어갔다. ◎

○ 내 백성이 내 말을 듣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이 내 길을 걷기만 한다면, 나 그들의 원수들을 당장 꺾고, 내 손을 돌려 그들의 적들을 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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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귀먹은 이를 낫게 하시려고 온 정성을 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한마디 말씀으로 고쳐 주시지 않고, 일련의 행위를 통해서 치유하십니다. 그를 군중에서 따로 데리고 나가시고,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며, 손에 침을 발라 혀에 대시고, 하늘을 향하여 한숨을 내쉬며, "에파타!"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행위가 끝났을 때 비로소 병자의 입과 귀가 열립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서를 통해 서, 교회 문헌과 가르침을 통해서, 전례와 기도를 통해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사건을 통해서, 우리 안의 양심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한 우리는 그 말씀을 온전하게 듣지 못합니다. 우리의 닫힌 귀를 열어 주시려고 다양한 방식과 여러 행위로 애쓰시는 주님을 믿으며, 마음을 열어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도록 합시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 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복음 환호송).

(최정훈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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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신부님

김찬선레오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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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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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님께서는 그 유명한 에파타 기적을 행하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에파타" 를 우리가 세례 때도 재현합니다. 세례로 이제부터는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귀가 열리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입이 열리라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의 행위가 다른 때와 같지 않습니다. 다른 때는 주님의 행위가 이렇게 은밀하지 않은데 오늘은 주님께서 귀와 입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다른 때는 그저 말씀 한마디로 치유해 주시는데 오늘은 여러 행위와 직접 손을 대시며 치유해 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과장된 제스처의 연출 같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하신 걸까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신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더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랑을 하신 것이고, 그에게 필요한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쉽게 열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봅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열리는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사람. 귀와 입만 닫힌 사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마음의 문까지 굳게 닫힌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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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귀와 입의 장애는 능력의 주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고치실 수 있고 그런 예는 성경에 수도 없이 많지 않습니까? 창세기에서는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백인대장은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의 종을 찾아가지 않으시고 한 말씀으로 치유하셨잖습니까? 그러나 오랜 장애로 그의 마음은 정말 굳게 닫혀있었고, 그래서 이 마음의 장애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치유하셔야 했을 겁니다. 내가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너만 미워한 것이 아니다. 너만 미워해서 너의 귀와 입을 닫히게 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너만 고통을 많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렇게 너만 특별히 사랑할게. 이런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말을 행위에 담아 그에게 말씀하셨을 것이고, 이런 특별한 사랑이 그의 마음에 닿아 귀와 눈과 함께 마음도 열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특별한 사랑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까? 이런 특별한 사랑이 아직도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아직도 필요하다면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완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렇다면 곧 사순 시기가 다가오는데 마음이 아직 사순 시기인 우리는 이런 말씀을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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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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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신부님

빠다킹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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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했던 선택 중에 가장 잘한 것을 제게 꼽으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사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사제 서품을 받기 전, 신학생 때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꽤 시간이 지나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는 이 사제의 길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 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창 시절 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세상일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힘들다면서도 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니 계속해서 힘들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자신의 책 '맹자'에서 군자삼락, 즉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합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의 왕 노릇은 포함되지 않는다. 부모 형제가 모두 살아 계시고 무탈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그리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의 왕 노릇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저는 이 군자삼락을 거의 가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지만, 우리 신앙 안에서는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신 것이니 주님 안에서 무탈하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 것을 추구하지 않아 그래도 100%는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미사 강론과 강의를 통해 교육하고 있으니 이 역시 큰 즐거움입니다. 계속해서 이 군자삼락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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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성공과 권세를 쥐는 것이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충실한 삶 안에서만 진짜 행복이 나오게 됩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행복도 세상의 성공과 권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어떤 사람이 함께했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당시에 힘을 가지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소외되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던 병자나 마귀 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세리나 창녀와 같은 죄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시는 주님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실 때,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이용해서 말씀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지요.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보이는 사랑처럼 하십니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에파타!, 곧 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치유를 위한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마음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나요? 진정한 행복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오늘의 명언: 기쁨을 주는 사람만이 더 많은 기쁨을 줄 수 있다(알렉산더 듀마). 사진설명: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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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신부님

이수철 신부님

"에파타! 열려라!"

-유혹에 빠지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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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참 기쁜 날이었습니다. 일단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 분들 세분을 만났습니다. 참 앞이 보이지 않았던 긴 어둠의 터널이었습니다. 여기 수도원에 30년 이상을 정주하다 보니 긴 어둠의 터널을 '믿음으로' 통과한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두 분의 자매들은 가정의 중심이 되어 힘든 가정생활의 긴 어둔 터널을 잘 통과하여 가족이 일단 안정권에 들어선 분들이고, 한 자매는 그 어려운 환경 중에도 유혹에 빠지지 않고 마음의 순수를 잃지 않고 긴 어둠의 터널을 잘 통과한 분입니다. 얼굴 가득 평화롭고 은총 가득한 모습에 저절로 "고맙고 반갑다!"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자매 어머니의 기도와 미사봉헌을 잊을 수가 없는 자매입니다. 변변한 집안 도움도 없이 2011년에 대학에 입학한 후 만 8년, 천신만고 끝에 2019년 2월 대학을 졸업하게 되어 어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과자를 사들고 감사인사차 갑작스럽게 방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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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보속으로 써 준 '말씀 처방전'을 보여 줄 때는 참 감동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기 위해' 매일 제 강론을 읽는다는 분들을 만나면 눈물겹기도 합니다. 강론을 읽다 보면 마음도 '맑아진다'는 고백도 듣습니다. 이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에 결정적 도움을 준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길이요 답입니다. 주님의 다음 시편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 해도 주님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에/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 (시편 23,4) 어제 써놨던 시도 생각납니다.

걷고 또 걸어도 또 걷고 싶은 길, 보고 또 보아도/또 보고 싶은 산, 가고 또 가도 또 가고 싶은 바다, 주님 당신이십니다!

첩첩산중, 하루하루가 넘어야 할 산 같은 인생입니다. 물론 이분들이 일단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했지만 앞으로도 이런저런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야 할 것이고 유혹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어제 읽은 어느 수도교부의 잠언도 생각납니다. “유혹받지 않은 자는 역시 시험받지 않은 것이다.”

유혹 없는 인생은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유혹의 시험 없이는 영적성장과 성숙도 없습니다. 마지막 최종 유혹이자 시험이 죽음입니다. 이런저런 유혹을 통과해 가면서 지혜와 겸손도 지니게 되고 주님의 은총으로 정화되고 성화되어 튼튼해지는 영혼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유혹을 겪는 중에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는 기도가 필수입니다.

주님의 전인적 삼박자의 치유과정이 감동입니다.

1. 측은한 마음

2. 사랑의 표현인 친근한 터치의 스킨십

3. 권위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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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파타!, 열려라!"귀와 입은 물론 전존재가 하느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자신을 향해 활짝 열린 말 그대로 전인적 치유의 구원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에파타!" 우리의 귀와 입은 물론 닫힌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열린 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열린 입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말씀의 은총이 그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수도자처럼 주님의 말씀을 많이 듣는 이도 없을 것이며 하는 말도 대부분 주님의 마음이 담긴 착한 생명의 빛 같은 말일 것이니 유혹에 빠질 위험도 적을 것입니다. 새삼 유혹에 빠지지 않는 첩경의 지름길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말하는 "에파타"의 열린 삶을 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치유 기적을 목격한 이들은 이를 널리 알림으로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다음 찬양과 감사로 가득한 사람들의 반응 분위기는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 같습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 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귀와 입뿐 아니라 전 존재를 활짝 열어 주시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시편 화답송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 (시편 32,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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