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하는 시간
2024년 5월 10일 매일미사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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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4년 5월 10일 매일미사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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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0일 매일미사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5월 10일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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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0일 매일미사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제1독서

5월 10일 매일미사 독서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그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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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0일 매일미사 부활 제6주간 금요일 복음

5월 10일 매일미사 복음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쌓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쌓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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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0일 매일미사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5월 10일 매일미사 묵상

주님 승천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 담화’를 계속해서 전하여 줍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 곧 수난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잠시는 ‘근심’스럽겠지만, 다시 조금 있으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에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쁨’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쌓인다. ……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해산을 앞둔 여자의 이미지를 통하여 지금 제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묘사하시고, 더 나아가 그 고통의 의미까지 알려 주십니다. 사랑하는 존재나 마음을 다하여 애착하던 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은 해산의 고통만큼이나 혹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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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여정일 때, 반드시 ‘부활’과 새로운 ‘생명’이 주는 ‘기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을 때의 기쁨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예술적 영감과 철학적 사고는 슬픔이나 비극에서 싹트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행하여야 행복을 그리워하고 슬퍼하여야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은 죽을 만큼의 고통에서 태어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기쁨은 가식적 행복일 수 있고, 언제 슬픔으로 바뀔지 모르는 불안을 품고 있습니다. 영적 기쁨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 내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믿을 때 생기는 은총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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