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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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걷는 시간

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오늘의 묵상

by 필로테아 202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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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오늘의 묵상

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오늘의 묵상

예로니모 성인은 347년경 달마티아 스트리돈에서 태어나 로마와 트리어에서 공부한 뒤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어를 익혔습니다. 382년 다마소 1세 교황의 요청으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불가타』를 남겼고,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채 420년경 베들레헴에서 선종하였습니다. 그는 암브로시오, 그레고리오,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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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제1독서

많은 민족들이 주님을 찾으러 예루살렘에 오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8,20-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20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21 한 성읍의 주민들이 다른 성읍으로 가서 “자,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 하고 말하리라.

22 많은 민족들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오리라.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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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복음

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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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오늘의 묵상

2025년 9월 30일 매일미사 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오늘의 묵상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예고하신 대로 고난과 죽음을 겪으실 것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향한 여정이기에 슬프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루카 9,51)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건너가실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기에 희망에 차 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 계획 안에서 이 죽음과 영광이, 그때가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해서 신뢰에 차 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운명을 느끼시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습니]다”(9,51). 이 구절을 굳이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글자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기로) 얼굴을 고정하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 얼굴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을 보시지 않고 하느님께서 당신께 맡기신 사명만을 보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히브리 말 표현이고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 안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고통받는 주님의 종(이사 53장)의 모습을 지닌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50,7).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한 덕분에 당신의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주님의 종의 모습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예수님 마음속 숨겨진 힘을 우리에게 밝히 드러냅니다. 그분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김태훈 리푸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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